항목 ID | GC08500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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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蒼水面三一獨立運動 |
이칭/별칭 | 창수면 만세시위운동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진호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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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창수경찰관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
성격 | 독립운동 |
관련 인물/단체 | 이수각|이현설|권재형|이현우 |
[정의]
1919년 3월 18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개설]
창수면 3.1독립운동은 1919년 3월 19일 약 200명의 면민이 참여한 가운데 일어났다.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대표 29명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뒤 2시 30분경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로써 전국적으로 일어난 3.1운동이 시작되었다. 영덕군에서는 1919년 3월 18일 영해면에서 3.1독립운동이 처음 일어났다. 그런 가운데 창수면에서는 창수동의 이수각(李壽珏), 신리동(新里洞)의 이현설(李鉉卨)·권재형(權在衡), 인량동(仁良洞)의 이현우(李鉉祐) 등이 다른 면의 사례를 따라 동지를 규합해 나갔다. 이들은 3월 19일 창수경찰관주재소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계획하고 각자 마을 주민들의 동참을 권유하였다.
[경과]
3월 19일 인근 영양군(英陽郡)의 이종구(李鍾龜)는 영해면 3.1독립운동 소식을 듣고 참여하기 위해 창수면으로 넘어 와서 오촌동(梧村洞)·삼계동(三溪洞) 주민들을 이끌고 영해면으로 가기 위하여 신기동(新基洞)에 이르렀다. 또한 갈상동(葛上洞)·신리동(新里洞) 등의 주민들도 여기에 합세하기 위하여 신기동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신기동 주민은 이미 영해면으로 출발한 이후였다. 군중들은 시간적으로 영해면까지 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창수동에서 독립만세를 외치자고 결의하였다. 이렇게 모인 군중들이 창수동으로 이동했고, 도중에 인근 주민들이 합세했다. 당시 창수동에서는 이수각과 그의 둘째 아들 이학술(李學述), 김금석(金錦石) 등이 “만세 군중이 신리동까지 왔다. 서둘러 창수로 가서 만세를 부르자.”라고 말하며 각 마을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창수 경찰관주재소도 3.1운동에 대비하고 있었다. 창수 경찰관주재소 경찰들은 3월 18일에 일어난 영해면 3.1독립운동의 상황을 접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하여, 경찰과 순사보 소유물을 인근 민가에 숨겨두었다. 3월 19일 오후 4시경 약 200명의 군중들이 각자 태극기 또는 나무 몽둥이를 휴대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주재소로 행진했다. 김재수(金在守)·권덕명(權德明) 등이 큰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재소를 파괴하라고 군중들을 독려했다. 이에 권재형·이현우·이현설·이현석(李鉉奭)·김용이(金龍伊) 등이 주재소에 진입한 뒤 공문서를 찢어 버렸으며 숙소·시설물 등을 파괴했다. 주재소를 공격한 군중들은 대한독립만세와 개사(改詞)한 노래를 부르면서 창수교까지 향했다. 행진 중 경찰들이 소유물을 숨겼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창수동으로 돌아와 물건들을 찾아 파괴했다. 창수면 3.1독립운동은 저녁까지 이어졌고, 오후 7시에 이르러 해산하였다.
[결과]
창수면 3.1독립운동에 참여한 인사들은 창수경찰관주재소 및 영덕경찰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창수면 만세운동 참여자들은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 검사국에 이어 경주지청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는데, 18명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며, 79명은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 의해 1919년 4월 5일부터 5월 2일 사이 기소되었다. 6월 5일 45명이 재판에 넘겨져 대구지방법원에서 4명이 징역 4년, 32명이 징역 1년 6월, 5명이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 4명은 무죄를 각각 선고받았다. 7월 11일에는 34명이 재판에 넘겨져, 1명이 징역 1년 6월, 20명이 징역 1년, 8명이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2명이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 2명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 33명이 공소를 제기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2명이 징역 4년, 18명이 징역 1년 6월, 13명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창수면 3.1독립운동은 일면 주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만세시위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