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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1572
한자 端午
이칭/별칭 수릿날,천중절,중오절,단양절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경기도 양주시
집필자 한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 풍속
의례 시기/일시 음력 5월 5일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음력 5월 5일에 지내는 명절.

[개설]

단오는 양의 수인 5가 겹치는 날로서, 일 년 중에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다. 조선 시대의 경우 3대 명절의 하나로 꼽던 단오는 수릿날,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五節), 단양절(端陽節) 등이라고도 한다. 전통 농경 사회에서는 음력 3월 3일을 기해 파종을 하고 모를 냈다. 그 후 농번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약간의 휴식이 준비되는 시점이 단오 때였다. 때문에 이날 하루는 농사를 쉬고 마음껏 놀이를 즐겼다. 양주 지역에서는 이날 창포물에 머리 감기와 그네뛰기, 약쑥 말리기 등의 풍속을 즐겼다.

[연원 및 변천]

단오는 중국의 초나라 풍속으로 전한다. 회왕(懷王) 때에 굴원(屈原)이라는 신하가 재주가 뛰어나 왕의 신임과 사랑을 받았다. 회왕이 죽고 양왕(襄王)이 임금이 되자 굴원은 간신들의 모함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에 굴원은 자신의 올바름과 지조를 보이기 위해 여러 편의 글을 지어 올리고 5월 5일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은 일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굴원이 죽은 날인 5월 5일을 기려 제사 지내고 액을 막기 위해 붉은 연지를 창포 뿌리에 묻혀 뿌림으로써 단오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파종이 끝난 5월 군중이 모여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면, 이미 이 시기에 농번기 휴식과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축제의 성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때에 들어오면서 단오는 명절이 되었다. 즉 고려가요 「동동(動動)」에서 단오를 수릿날이라 한 것이나, 단오에 관료에게 하루 휴가를 주고 예종 대부터 단오시를 짓게 하였으며, 단옷날에 경령전 참배와 석전(石戰)이 있었던 것 등으로 보아 이미 고려에서는 중요한 세시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재액(災厄)[재앙으로 인한 불운]을 막기 위해 ‘천중부적(天中符籍)’을 만들어 대궐 안이나 사대부(士大夫) 집의 문설주에 붙였다. 복을 얻고 귀신과 병을 없애라는 주문을 쓰거나 처용 상이나 도부(桃符)[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를 주사(朱砂)로 그렸다. 이외 각종 단오 행사가 잇따랐다. 양주 지역은 고려와 조선 시대 때 도성과 멀지 않았던 경기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단오를 지냈으리라 여겨진다.

[절차]

단오 때에는 현재 그 풍속 등이 많이 줄고 약화되기는 했으나 예전에는 이날 재액을 예방하는 주술적 행위나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 농번기 잠시 휴식과 놀이를 즐김으로써 생산 효과를 높이는 씨름 및 탈춤 등 민속놀이, 무병 건강을 비는 약쑥 말리기 등이 있었다. 석전과 같은 놀이는 근대 이후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한편 양주 지역에서는 이날 단오에 창포를 베어 삶아 머리를 감았으며, 4월 초파일에 매어 둔 그네를 이날까지 놀고 끊기도 하였다. 단오 오시(午時)[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에는 쑥을 베어 말려 놓고 해산 때 사용하였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양주 지역에서의 단오 관련 생활 민속을 보면 크게 네 가지가 확인된 바 있다. 창포로 머리 감기, 그네뛰기, 약쑥 말리기, 금초 등이 그것이다. 현재 양주시에서는 단옷날과 이때를 전후한 시기에 예부터 양주 지역에서 행하던 양주별산대놀이와 양주소놀이굿 공연 등을 행하여 농번기 때 놀이를 통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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