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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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濟崔爀 孝子旌門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현석로 495번길 52-9[우고리 23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서동일 |
[정의]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최제(崔濟)와 최혁(崔爀)의 정문(旌門).
[개설]
정문이란 전통 시대에 국가가 충신·열녀·효자의 행실을 널리 알릴 목적으로 해당 인물이 살던 마을 입구 또는 집 앞에 세워 준 문(門)을 가리킨다. 정려(旌閭)·정려문(旌閭門)·홍살문이라고도 한다.
최제[1659~1723]는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해 11세에 모친상을 당하였을 때 하는 행동이 어른과 같았고, 부친이 객지에서 전염병에 걸렸을 때에는 구걸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 40년간 계모를 봉양하였는데 생모와 다름없이 대하였다고 한다. 최혁[1778~1838]은 최제의 현손(玄孫)인데, 모친이 병으로 눕자 세 번이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모친의 입에 흘려 넣음으로써 살아나게 하였다고 한다.
[변천]
조선 후기에 조정에서 효자 최제와 최혁을 기리기 위하여 정문을 내렸다. 최제의 정문은 1855년(철종 6)에 건립되었고, 최혁의 정문은 1869년(고종 6) 양주 유림 200여 명의 발의로 내려졌다.
[현황]
최제·최혁 효자정문(崔濟·崔爀孝子旌門)은 맞배지붕 건물로,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 가재울마을에 위치한다.
[의의와 평가]
최제·최혁 효자정문을 통하여 조선 시대에 조정에서 유교 윤리를 정착시키기 위해 편 정책의 일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