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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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器 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홍정덕 |
소재지 | 옥정동 유물 산포지1 -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산 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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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옥정동 유물 산포지2 -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산 92-1 |
소재지 | 상수리 유물 산포지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산 55-1 |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철기는 청동을 대체하여 사용된 금속으로 무기와 농기구로 가공되었다. 철은 청동에 비해 가공하기가 쉽고 다양한 형태로의 주조(鑄造)나 단조(鍛造)가 가능하여 활용도가 높은 금속이지만 고온의 가공 시설이 필요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철광석을 확보해야하기에 당시로선 철기 관련 제작이 획기적인 선진 기술에 속하였다. 따라서 철기를 확보한 집단은 인근 세력과의 경쟁에서 훨씬 우세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한편, 철기는 농경에도 큰 영향을 미쳐 효과적인 산림 벌채를 통해 다량의 토지 확보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농업 경영에서도 높은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지배 체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유적]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발굴된 철기 시대 유적으로는 양주시 옥정동에서 2곳, 남면 상수리의 유물 산포지 1곳으로 모두 3곳의 유적이 확인되고 있고, 수습되는 유물은 모두 토기 조각들이다. 옥정동 유물 산포지1에서는 황갈색·적갈색·회색의 연질, 경질 토기와 간석기 등이 출토되었고, 옥정동 유물 산포지2에서도 역시 회색 연질 토기와 소뿔 모양 손잡이, 구멍무늬 토기[공열 토기] 등이 수습되었다. 상수리 유물 산포지에서는 갈색의 연질 토기와 회갈색의 연질 토기가 수습되었다.
한편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와 광적면 가납리 등에서도 철기 시대의 토기편이 수습되지만 이 두 곳은 유적이 교란·파괴된 상태에서 청동기 시대 뿐만 아니라 삼국 시대, 심지어는 고려와 조선 시대의 유물이 함께 나타나고 있어 성격을 특정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경기도 양주시에서 철기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유적은 옥정동의 야철지 유적이다. 야철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다량의 슬래그가 비교적 넓은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어 이곳이 야철지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인근에서 철산이나 철광 채굴에 관련된 흔적이 없어 철 생산과 관련된 전반적인 구조를 확인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양주 지역의 초기 철기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초기 철기 유적지들에서는 타날무늬를 위주로 하는 토기편이 주로 수습되는 바, 역시 철기를 바탕으로 한 농경의 흔적으로 판단된다. 초기 철기 시대의 집터인 여(呂)자형, 또는 6각형 집터는 아직 양주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고인돌을 대체한 목곽묘(木槨墓) 역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청동기 시대의 양주 지역이 초기 마한에 속한다는 문헌 자료와 마한이 현재 양주 지역에서 말갈 및 한(漢) 군현 세력과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는 기록에 근거하면 삼국 시대 이전의 양주는 생각보다 훨씬 발전된 철기 문화를 향유하며 지방 세력이 각축을 벌이던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기도 양주의 철기 문화는 이미 확인된 양주 지역의 야철지를 좀더 정밀하게 발굴한 뒤 철기의 생산 구조와 이에 연관된 사회 구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추후 발굴과 조사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경기도 양주 지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군부대 주둔지와 개발이 제한되어 있는 지역에 대한 더욱 정밀하고 체계적인 조사와 발굴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