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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와 덕천리 들 이름에 관한 설화.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간물나들과 내평은 울진군 북면 고목리와 덕천리에 있는 들로, 울진 북쪽에서는 가장 큰 들이다. 이 들은 동해안 가까이에 접하고 있어 옛날에 간물[海水]이 들락날락했다는 의미에서 ‘간물나들’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고려 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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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읍성지. 고읍성에 관한 문헌 사료의 기록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재현동오리(在縣東五里)’라 하여 당시 시점을 고산성(古山城)에 읍치를 두고 구 읍지로서 울진읍성[고읍성]을 바라보았다. 둘째, 고읍성의 둘레는 1,210척으로 기재되어 있다. 1,210척을 당시의 교정 척도로 환산하면 약 377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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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에 있는 고려 후기 울진현의 치소인 토축 읍성지. 고현성에 관한 기록은 오래된 지리지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1631년 간행된 『울진군지(蔚珍郡誌)』의 울진읍 성곽 고현성조에서 ‘재현동현내동해곡토축위읍려공민왕이십년임자위왜구분선이읍우왕숙(在縣東縣內洞海曲土築爲邑麗恭愍王二十年壬子爲倭寇焚燹移邑于王淑)’으로 확인된다. 고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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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거일1리에 있는 개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1350년 고려시대 충정왕 때 안성이씨가 이 마을에 와서 터전을 잡고, 박씨가 개척을 할 당시에 마을의 동쪽에 ‘개’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개바위’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구암(狗岩)’이라고 부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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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 토호인 금초(今草)가 지배층의 수탈에 저항하여 일으킨 농민봉기. 고려 무신정권기에 농민과 천민이 주체가 되어 발생한 농민봉기는 고려 사회의 정치·경제·사회적 모순이 누적된 결과였다. 무신의 난 이전에도 토지에서 유리된 농민들이 산발적으로 지배층에 저항하였으나, 무신의 난 이후에는 농민뿐만 아니라 천민들까지 참가하는 양상으로 발전되면서 전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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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평해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호는 백암(白巖). 아버지는 예의판서(禮儀判書) 김원로(金元老)이다. 평해군수로 재직할 때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이름을 제해(齊海)로 바꾸었는데, 동해로 뛰어든 제나라 노중련(魯仲連)의 절개를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고는 시 한 수를 써서 벽에 걸어둔 채 행방을 감추었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해의 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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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은둔한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시조는 신라 때 영의공(英毅公) 남민(南敏)이고, 분파조는 고려 때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남홍보(南洪輔)이다. 아버지는 종부시령판사(宗簿侍令判事) 남승고(南承顧)이다. 부인은 강릉최씨(江陵崔氏)로 최유의(崔有猗)의 딸이다. 맏아들 남호(南顥)는 만호공파(萬戶公派)의 시조가 되었으며, 둘째 아들 남이(南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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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9년(충정왕 1) 이곡이 울진군 소재 성류굴 탐사와 평해읍 월송정까지 여행하고 지은 유람일기. 「동유기」는 『가정집(稼亭集)』 권5에 전하는 기행문이다. 이곡이 51세 때인 1349년에 금강산과 관동지방을 유람하면서 느낀 감상을 적고 있다. 이 「동유기」의 마지막 부분에는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산30의 성류굴(聖留窟)부터 평해읍 월송리 362-2번지[월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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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절 터. 배잠사지(盃岑寺址)에 관한 기록은 현존하는 고문헌(古文獻)에는 나타나지 않고 다만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을 뿐이며, 근래에 이 배잠사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 몇 편 있을 뿐이다. 특히, 1977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攬)』은 배잠사지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책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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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 삼층석탑. 배잠사지 당간지주가 서 있는 곳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m 되는 지점에 있었는데 지금은 도굴당하고 없다. 원래 배잠사지 삼층석탑이 있었던 자리는 현재 기단 갑석이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약 15m 떨어져 있었던 곳이라 한다. 현 기단 갑석[두께 6㎝, 112×82.5㎝]은 주초석으로 추정되는 자연석 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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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 삼일포 단서암(丹書岩)에 있었던 매향비. 매향(埋香)은 미륵불(彌勒佛)의 용화회(龍華會)에 공양할 매우 귀한 향·약재(香·藥材)인 침향(沈香)을 마련하기 위하여 향목(香木)이나 송목(松木)·진목(眞木)·상목(橡木) 등을 갯벌에 묻는 의식이며, 침향한 향을 매개로 장래에 하생(下生)할 미륵불을 만나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행위이다. 연해지방민들은 매향의식을 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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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을 소재로 시와 기문을 남긴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증조할아버지는 호장 안득재(安得財)이고, 할아버지는 호장 안희서(安希諝)이다. 아버지는 봉익대부밀직제학에 추증된 안석(安碩)이고, 어머니는 검교군기감 안성기(安成器)의 딸이다. 부인은 검교군기감 문구(文龜)의 딸이다. 1299년(충렬왕 25) 성균관시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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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고려시대 정자. 월송정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송림에 자리 잡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강릉분기점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동해시에 이르면 국도 7호선과 만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국도 7호선을 타고 달려 동해시를 벗어나 삼척시를 지나면 울진으로 접어든다.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진을 벗어나 영덕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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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울진 지역을 주제로 시와 기문을 남긴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보(仲父), 호는 가정(稼亭), 초명은 운백(芸伯). 한산이씨 시조인 이윤경(李允卿)의 6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비서랑(秘書郞) 이효진(李孝進)이고, 할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창세(李昌世)이다.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이자성(李自成)이고, 어머니는 흥례이씨로 이춘년(李椿年)의 딸이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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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안성(安城). 증조할아버지는 상의원(尙衣院) 관리였던 이일휴(李日休)이고, 할아버지는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이진승(李晋昇)이다. 아버지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이천주(李天柱)이고,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사재감(司宰監)에서 일한 김규원(金珪原)의 딸이다. 부인은 평해황씨로 문림랑(文林郞) 황비(黃庇)의 딸이다. 아들은 충정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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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울진(蔚珍). 울진부원군 장말익(張末翼)의 8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영동정판문하성사(令同正判門下省事) 장영의(張令宜)이고, 할아버지는 직장(直長)을 지냈다. 아버지는 동정(同正) 장한련(張漢連)이며, 어머니는 울진임씨로 임유무(林惟茂)의 딸이다. 1205년(희종 1) 진사시 병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전리판서(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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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년 진사시 병과에 급제한 장양수에게 내린 급제 패지. 고려 후기 울진장씨 울진 입향조인 장말익(張末翼)의 후손인 장양수가 진사과 병과에 급제하면서 하사받은 홍패이다. 희종 원년에 실시한 동당시(東堂試)에 급제한 장양수에게 공원(貢院)의 판정에 의하여 교지(敎旨)로 병과 급제를 사급(賜給)하기로 하고, 첩(牒)이 이르자 당시 수상(首相) 등 5명의 재상이 그 교지를 받들어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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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울진(蔚珍). 아버지는 예빈승(禮賓承) 장거석(張擧碩)이다. 장인행은 1316년(충숙왕 3)에 직장동정을 지냈으며, 목은(牧隱) 이색(李穡)·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고려 왕실 회복을 위해 힘쓰다가 뜻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전원으로 돌아가 은거생활로 평생을 마쳤다.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여 지은 시가 있는데 “대륙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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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회정(晦亭). 할아버지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전희경(田希慶)이고, 할머니는 웅신서씨(熊神徐氏)로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서성윤(徐成允)의 딸이며,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문원공(文元公) 전경은(田耕隱)이다. 전자수는 고려 말에 첨의평리겸진현관대제학(僉議評理兼進賢館大提學)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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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소장되어 있는 불영사의 창건기를 새긴 현판. 불영사 시창기 현판에 새겨진 「천축산불영사 시창기(天竺山佛影寺 始創記)」는 1370년(공민왕 19) 한림학사 유백유(柳伯濡)가 쓴 것으로, 기문에 따르면 유백유는 신라의 옛 비석에 근거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전설적인 경향이 강하다. 창건기에 따르면 불영사는 651년(진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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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최복하는 고려 말 한성부윤(漢城府尹),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 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한 후 사직하여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2리 무령현(武靈峴)에 은거하였다. 은거 당시 상국(相國) 이구(李玖)의 관동이군(關東二君)에게 보낸 시에서 “봉지(鳳地)의 사간(司諫)이 선사(仙槎)에 높이 누워/ 일찌감치 어부가의 뜻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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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1283년(충렬왕 9)에 원나라 세조가 일본을 정벌할 때 명주군(溟洲君) 최한주(崔漢住)도 종군하게 되었다. 그런데 동해 바다에서 뜻밖의 회오리바람을 만나 쇠닻이 바위틈에 걸려 닻줄이 끊어지려 하자 최한주가 향을 피우면서 하늘에 아뢰기를 “이 한 몸을 희생하여 여럿의 목숨을 구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다. 최한주는 쇠망치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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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축 읍성. 『관동읍지(關東邑誌)』와 『울진군지(蔚珍郡誌)』에서는 선덕왕 갑인(甲寅)에 석성(石城)으로 시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선덕왕 때에는 갑인이라는 간지가 없어 정확히 연대를 알 수 않다. 『여도비지(輿圖備志)』와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축성 연대를 고려 말로 기록하고 있다. 1357년(공민왕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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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고려 후기 향교건축.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평해읍사무소 뒤편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다. 평해향교는 1357년(공민왕 6)에 저전(楮田) 반월산(半月山) 아래에 지었다가 1407년(태종 7)에 군수 김한철(金漢哲)이 송릉동(松陵洞)으로 이건하였다. 당시에는 명색이 향교였을 뿐 완전히 정비되지 못하였다. 이후 계속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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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할아버지는 금오장군(金吾將軍)·태자검교(太子檢校)를 지낸 황온인이고, 아버지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황유중(黃裕中)이다. 형제로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황진(黃璡)과 숭록대부삼중대광보국(崇祿大夫三重大匡輔國) 황용(黃庸) 등이 있다. 충렬왕(忠烈王) 때 세자를 위하여 세 번이나 원나라에 갔다 와서 익대공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