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6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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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德煥 |
영어공식명칭 | Ra Deok-Hwan |
영어음역 | Ra Deok-Hwan |
영어공식명칭 | Ra Deok-Hwan |
이칭/별칭 | 나덕환,송포광국(松浦光國)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재성 |
출생 시기/일시 | 1904년 - 라덕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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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서품 시기/일시 | 1939년 5월 10일 - 라덕환 목사 안수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1년 9월 23일 - 라덕환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46대 총회장 당선 |
몰년 시기/일시 | 1971년 - 라덕환 사망 |
활동지 | 라덕환 활동지 - 전라남도 순천시 저전동 |
성격 | 목사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순천제일교회 목사|대한예수교 장로회 제46대 총회장 |
[정의]
일제강점기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목사.
[개설]
라덕환(羅德煥)[1904~1971]은 순천 지역에서 기독교 목사로 활동하던 중 1940년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1971년까지 목사로 활동했다.
[활동 사항]
라덕환은 전라남도 영광군의 사립 영광강습소에서 소학교 6년 졸업 과정을 수료하고 경성 피어선 성경학원을 거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학기를 수료했다. 이후 일본 히로시마현 사립 흥문중학교(興文中學校)를 졸업하고 평양신학교에 다시 다닌 후 졸업했다.
라덕환은 1936년 순천승주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다. 1939년 5월 10일 목사 안수(按手)[기도를 할 때 또는 성직 수여식이나 기타 교회의 예식에서 주례자가 신자의 머리 위에 손을 얹는 일]를 받고, 1939년 5월 21일 담임목사가 되었다. 이 무렵인 1940년 3월 초순 무렵 자택에서 신도들에게 일본의 천조대신(天照大神)과 여호와신은 ‘이명(異名) 동일신’이라고 말했다. 이 일로 “천조대신과 천황의 존엄을 모독하고 불경한 행위를 했다.”라는 명목으로 체포되었다. 1942년 9월 30일 광주지방법원 형사부로부터 징역 1년형의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순천제일교회에 따르면 ‘3년 10개월 복역’했다고도 하지만 1943년 11월 5일 출소한 사실로 보아 복역 기간은 1년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사상과 저술]
라덕환은 출소하여 휴양 후 1945년 3월 재시무에 들어갔다. 1950년 6년제 중학교를 3년제 중학교와 3년제 고등학교로 분리하면서 순천매산중학교와 분리되어 은성고등학교[현 순천매산고등학교]가 설립될 때, 라덕환이 회장으로 있던 순천노회(順天老會)에서는 은성고등학교 후원재단을 수립하며, 매년 경상비를 보조할 것을 서약하였다. 1961년 9월 23일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46대 총회장에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