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659
한자 李昌洙
영어공식명칭 Lee Chang-su
영어음역 Lee Chang-su
영어공식명칭 Lee Chang-su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재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6년 8월 19일연표보기 - 이창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2년 2월 28일 - 이창수 남선농민연맹총회에서 서무부 위원으로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22년 4월 - 이창수 순천청년회 정기총회에서 강론부장에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이창수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28년 - 이창수 석방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월 - 이창수 여수 지역으로 이주
출생지 이창수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면 문리
거주|이주지 이창수 거주지 - 전라남도 순천시
거주|이주지 이창수 거주지 - 전라남도 여수시
활동지 이창수 활동지 - 전라남도 순천시
활동지 이창수 활동지 - 전라남도 여수시
성격 신문기자|사회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동아일보사 순천분국장|여수건국준비위원회 노동부장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신문기자이자 사회운동가.

[가계]

이창수(李昌洙)[1886~?]는 1886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태어난 후 1920년대에 순천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활동 사항]

이창수는 전라남도 영암군 명남학교를 중퇴한 후 면작조합의 주사, 금융조합의 서기를 지냈다. 1920년대 순천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동아일보사 순천분국장, 조선일보사·시대일보사의 기자와 지국장을 지냈다. 1922년 4월 순천청년회 정기총회에서 강론부장에 선출되었다. 1923년 2월 11일 전라남도 순천면과 서면의 농민대회 간부가 중심적 발기인이 되고 순천군 13면의 대표 66명이 참가하여 순천농민대회연합회 창립총회가 개최될 때 이영민 등과 함께 연합회 발기인이 되었다.

1922년 2월 28일 여수·순천·광양·보성군 농민들이 순천 지역에 모여 개최한 남선농민연맹총회에서 이영민·최석주 등과 함께 서무부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6년 조선공산당사건으로 이영민·박병두와 함께 체포되어 1926년 7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예심 회부되었으며 1928년 석방되었다. 1928년 11월 13일과 1930년 6월 2일에 순천경찰서에 일시 예비 검속되었다가 곧 석방되기를 반복했다. 1931년 1월에는 여수 지역으로 이주하여 여수에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1932년 7월 조직된 여수적색노동조합에서 활동하였고,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결성된 여수건국준비위원회 노동부장으로 활동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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