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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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劉興柱 |
영어공식명칭 | Yu Heung-ju |
영어음역 | Yu Heung-ju |
영어공식명칭 | Yu Heung-ju |
이칭/별칭 | 송암(松庵)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재성 |
출생 시기/일시 | 1870년 12월 11일 - 유흥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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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 유흥주 3.1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유흥주 투옥 |
몰년 시기/일시 | 1952년 7월 5일 - 유흥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유흥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유흥주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하송리 205 |
거주|이주지 | 유흥주 거주지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하송리 205 |
활동지 | 유흥주 활동지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유흥주(劉興柱)[1870~1952]는 현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하송리에서 태어났다. 유흥주는 순천 지역의 유림으로서 1919년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일반인의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김종주(金鍾胄)[1864~1947]와 함께 1919년 4월 13일 낙안읍성 일대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김종주와 더불어 1919년 4월 13일 각자 자택에서 태극기를 장만하고 ‘조선독립기’, ‘대한독립기’라고 써넣은 후 낙안읍성 서문 밖에 들고 가서 박태문(朴太文)·배윤주(裵潤柱)·배형주(裵炯柱)[1885~1946]·김선제(金善濟)[김종주의 아들] 등에게 독립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우리 동지들은 오늘이 때마침 낙안읍 장날이므로 이를 기회로 하여 장터로 나아가 독립 만세를 외쳐, 우리 동포가 함께 일어나도록 하여 잃었던 국권을 되찾자.”라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1919년 4월 13일 오후 2시 무렵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면서 문 안으로 행진했다.
당시 서문 보초를 서던 일본군이 제지하자 유흥주는 보초를 밀어제치고 시위대와 함께 서문 안으로 들어가 군중을 향해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제지하는 일본군의 총을 탈취하려다가 총탄에 맞아 오른팔을 다쳤다. 이후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재판에서 징역 1년 6월에 처해졌다.
[상훈과 추모]
유흥주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