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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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信容 |
영어공식명칭 | Yang Sin-yong |
영어음역 | Yang Sin-yong |
영어공식명칭 | Yang Sin-yong |
이칭/별칭 | 경중(景仲),장춘(長春)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욱 |
사당|배향지 | 용강서원 - 전라남도 순천시 금곡동 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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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학자|무관 |
성별 | 남 |
본관 | 제주 |
대표 관직 | 비변랑|인동부사|경주영장 |
[정의]
조선 후기 순천 지역에서 거주했던 유학자이자 무관.
[가계]
양신용(梁信容)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경중(景仲), 호는 장춘(長春)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학포 양팽손(梁彭孫)[1488~1545]이다. 양신용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활동 사항]
양신용은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랑에 올랐다. 인조 때에 인동부사(仁同府使)에 제수되었고 경주영장(慶州營將)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노쇠한 자신을 대신하여 아들 양유남(梁有南)을 의병으로 보낸 후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앵무산에 망성암(望聖庵)을 짓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이후 양신용은 심산유곡을 찾아 은거 생활을 하면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