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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292
한자 密陽 宛在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로 273-36[위양리 296]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하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00년연표보기 - 밀양 완재정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4년 - 밀양 완재정 증축
문화재 지정 일시 2017년 3월 30일연표보기 - 밀양 완재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33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밀양 완재정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밀양 완재정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로 273-36[위양리 296]지도보기
원소재지 완재정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로 273-36[위양리 296]
성격 누정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안동권씨 권학산 종중
관리자 안동권씨 권학산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33호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에 있는 개항기 정자.

[개설]

밀양 완재정(密陽宛在亭)은 학산(鶴山) 권삼변(權三變)[1577~1645]의 유지를 받들기 위하여 안동권씨 후손들이 1900년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에 건립한 정자이다.

권삼변은 시조 권행(權幸)의 23세손이고, 증조할아버지 권광국이 종정공파 파조이다. 권삼변은 6세 때 아버지 권추(權錘)가 죽자 교육상 어머니 파평윤씨를 따라 위양마을에 터를 잡았다. 당숙 권치(權錙)가 명종 때 단성에서 위양리 도방동마을로 이거하여 있던 연유였다. 권삼변은 임진왜란 때 어머니를 등에 업고 경상남도 창녕군 성산면 대산리로 피난 갔다가 왜군에게 붙잡혀 일본 산양도에 강항, 백수회, 정호인과 함께 지내다가 1604년 귀환하였다.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눈이 멀어지기까지 한 어머니가 귀국 후 10여 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애타는 그리움으로 밀양 위양못에 정자를 지으려고 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권삼변의 후손들은 250여 년이 지난 1900년 이르러 3칸의 집을 짓고 배를 띄워 왕래할 수 있도록 하였다. 향산 이만도의 기문[1903], 농산 장승택의 기문[1908]에 자세한 경과가 기록되어 있다. 정자 이름은 권삼변이 생전에 창건을 염두에 두고 지은 「완재정」 시에서 가져왔고, ‘완재(宛在)’는 『시경』 겸가에 나오는 말이다.

[위치]

밀양 완재정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96번지에 있다. 밀양 위양못 근처에 있어 찾기 매우 쉽다. 인근 위양마을에 학산정사(鶴山精舍)가 있다.

[변천]

밀양 완재정은 1914년 동서 방향에 6칸을 더 지었고, 현재까지 변함없이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 밀양 완재정은 2017년 3월 3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33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형태]

밀양 완재정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목조 건물이다. 완재정밀양 위양못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마루에서 밀양 위양못을 볼 수 있도록 남쪽에 문을 별도로 설치하였다.

[현황]

밀양 완재정의 내벽에는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1842~1910]의 「완재정기」[1903],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1839~1912]의 「완재정기」[1908], 몽맹헌 손창현[1844~1920]의 「완재정 중수상량문」, 시헌(時軒) 안희원(安禧遠)[1846~1919]의 「완재정 중수기」[1917]를 비롯하여 여러 시판이 걸려 있다.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완재정을 제재로 지은 시가 풍부하게 전한다. 밀양시에서는 밀양 위양못완재정을 밀양 대표 명소로 가꾸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안동권씨 위양종중에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완재정을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밀양 완재정은 안동권씨의 경상남도 밀양 정착 과정과 지역 내 분포 상황, 밀양의 유형문화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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