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설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211
한자 氷雪堂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빙설당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지도보기
성격 정자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관리자 나주오씨 문중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있는 조선 시대 때에 건립된 정자.

[개설]

빙설당(氷雪堂)은 오이익(吳以翼)이 건립하였으나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고, 원래 초당 강학터로 사용하였다. 빙설당의 이름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묘고야산에 신인이 사는데, 살결은 빙설과 같고(肌膚若氷雪) 오곡을 먹지 않으며 바람을 호흡하고 이슬을 마신다."라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고, 여기에서 빙설은 매화를 상징한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석문산 석문동천의 깊은 곳에 있다.

[변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167책 '현종 2년 4월 16일 을미' 기사, 오이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74년(고종 11)에 간행한 시문집 『석문집(石門集)』권5 부록 김창흡(金昌翕)이 쓴 묘지명을 살펴보면 "1661년(현종 2) 2월 유배에서 풀려난 이후 바로 서실을 짓고 석문거사로 자칭하며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고 하는데, 빙설당의 건립 시기를 1661년 또는 그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서실이 빙설당이라는 언급은 없으므로 구체적인 건립 시기는 미상이다. 다만 윤용구(尹用求)[1853~1937]가 현판을 작성하여 빙설당의 개축 시기를 예상할 수 있으나, 이 역시 정확한 년도는 알 수 없다.

오이익의 후손 오준선(吳駿善)은 1910년 한일합병 이후 5년 동안 빙설당을 강학장소로 활용하였다. 오준선 사후 후손들은 오준선빙설당에 안장하고 매년 11월 제향하고 있다. 처음 정자가 지어졌을 때는 전라도 나주 지역에 속하였으나, 시도별 행정개편으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으로 변경되었으며, 현재는 나주오씨 재각(齋閣)으로 사용 중이다.

[형태]

빙설당은 정면 4칸에 측면 2칸으로 내실을 들였다.

[현황]

빙설당이 있는 석문산나주오씨(羅州吳氏)의 선산으로 빙설당에서 마주 건너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오이익과 7대조 정5품 통덕랑(通德郞) 오명석(吳明錫)의 묘소가 있고, 그 아래 오준선이 아내 상산김씨(商山金氏)와 함께 묻혀 있다. 현재는 빙설당 옆을 둘러 음식점이 개설·증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석문산은 마치 성처럼 생겨서 구한말 전해산(全海山) 의병부대 등이 자주 주둔하며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곳으로 유명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