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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진을 지나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2148
한자 淸盧鎭-
이칭/별칭 과청로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재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몰년 시기/일시 1227년 - 김희제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226년연표보기 - 김희제 「청로진을 지나며」 창작
편찬|간행 시기/일시 1449년~1451년 - 『고려사』의 간행 시기. 열전 김희제 편에 「청로진을 지나며」 수록
편찬|간행 시기/일시 1478년 - 「청로진을 지나며」 서거정의 『동문선』에 수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226년 - 김희제 서북면 병마사 재직 중 우가하 침략
출생지 김희제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지도보기
배경 청로진 - 의주의 한 군영
성격 칠언 율시
작가 김희제

[정의]

고려 시대 군산도(群山島) 출신의 장군 김희제(金希磾)가 금(金)의 원수 우가하(于哥下)를 물리치고 손습경(孫襲卿), 송국첨(宋國瞻)과 화답하며 지은 칠언 고시.

[개설]

고려 고종 때의 문인이자 장군인 김희제는 몽고 사신의 거만한 행위나 금(金)의 원수에 노략질에 단호하게 대처한 애국적인 인물로 『고려사』 열전에 이름이 올랐다. 「청로진을 지나며」김희제가 1226년 서북면 병마사의 직을 수행할 때 벌어진 사건과 관련이 있다. 『고려사』의 기사에 의하면, 그가 의주 분도 장군에 재직할 때 금의 원수 우가하(于哥下)가 마산(馬山)에 주둔하면서 의주(義州), 정주(靜州), 인주(麟州)를 침략했다. 이를 물리친 후 서북명 병마사로 재직할 때, 우가하는 다시 의주와 정주에 몽고병으로 가장한 병사를 보내 노략질을 하였다. 이를 물리친 후, 김희제는 판관 예부 원외랑 손습경과 감찰 어사 송국첨과 의기 투합, 석성을 토벌하고 청로진으로 돌아왔다. 이에 「청로진을 지나며」라는 시를 짓고, 송국첨과 손습경이 이 시에 화답하였다. 시는 『고려사』와 『동문선』에 모두 실려 있다.

[구성]

칠언 팔행으로 구성된 시. 여덟 행은 두 행씩 묶여 기, 승,은 전, 결의 구성을 보여준다. 기(起)의 두 행은 우가하의 만행에 분개하는 심정을, 승(承)은 전투를 독려하여 승리의 기세를 몰아가는 모습을, 전(轉)은 석성을 토벌한 사건을, 결(結)은 승리한 후의 감상을 전달한다.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서로 호응을 이루는 구조로 되어 있어, 김희제의 뛰어난 시적 감각을 알 수 있다.

[내용]

서거정 외 찬, 『국역 동문선』과 『군산 시사』를 비교한 결과, 번역한 대부분이 대동 소이하나 마지막 행의 번역에 큰 차이가 있다.

연결되는 그 앞의 행까지 이어서 상호 비교하자면, 『국역 동문선』의 해당 번역은 “잔을 들어 대장부의 마음은 이미 풀었지만, 돌아갈 면목 없으매 부끄러워 땀 흐르네.”이고, 『군산 시사』의 번역은 “잔을 들어 이미 장부의 마음을 펴매, 돌아가 뵈온들 무슨 부끄러움이 있으리오.”이다. 원문은 “臨杯已鴨丈夫心(임배이압장부심) 反面無由愧汗發(반면무유괴한발)”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無”(무)를 그 앞부분에 이어서 면목 “없음”으로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뒷부분에 이어 부끄러움이 “없음”으로 읽어야 하는지, 두 해석이 서로 충돌한다. 여기서 뵈어야 할 대상을 두번째 행의 천궐(天闕), 즉 고려 고종으로 설정하고, 시와 관련한 사건을 함께 고려한다면 『군산 시사』의 번역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군산 시사』의 번역은 뒷부분의 “汗發”(한발)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번역이라 할 수 없다. 무인으로서 후련한 마음이 당시의 정황에 더 맞는다고 느껴진다.

아래에서는 두 번역을 비교하고 위의 분석을 고려하여 새로운 번역을 제시했다. 김희제는 빈번하게 조국의 강토를 노략질하는 우가하에게 분노하였고, 임금에 대한 충성으로 군대를 지휘하여 석성을 점령하였다. 돌아가는 길에 느낀 후련함을 임금님께 승전고를 고하는 심정으로 노래한 것이 이 시다. 군산도 출신의 문인 겸 무장 김희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하는 심정으로 시의 전문을 제시한다.

과청로진(過淸盧鎭)             [청로진을 지나며]

장군장월미설치(將軍杖鉞未雪恥) [장군이 도끼를 잡고도 부끄러움을 씻지 못했다면]

장하면목조천궐(將何面目朝天闕) [장차 무슨 면목으로 천궐에 조회하랴]

일분청사지마산(一奮靑蛇指馬山) [푸른 뱀 한 번 휘둘러 마산을 가리키매]

호군세욕개전궐(胡軍勢欲皆顚蹶) [오랑캐의 군세는 모두 거꾸러지는 듯]

호분등나섭오강(虎賁騰拏涉五江) [용사들이 날고 뛰어 다섯 강을 건너니]

성곽란위외신말(城郭爛爲煨燼末) [성곽은 모두 타 재가 되었구나]

림배이창장부심(臨杯已暢丈夫心) [잔을 들어 이미 장부의 마음을 펴매]

반면무유괴한발(反面無由愧汗發) [돌아가 뵙더라도 부끄러울 리 없는 땀이 흐르네]

[의의와 평가]

김태준에 의하면 고려 고종 시대는 “안으로는 최우(崔瑀) 일파의 무반(武班)이 국권을 희롱하고 밖으로 거란·금구(金寇) 대신에 몽고가 침입하여, 왕이 도찬(逃竄)하던 때”로 “내우외환이 중첩한” 시대다. 「청로진을 지나며」는 이러한 시대에 외환과 싸운 한 무장이 쓴 일종의 전승 시가이자 애국시다. 자국을 침입하는 외적인 몽고와 금에 대항하여 싸운 장군의 기개가 넘쳐 흐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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