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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945
한자 壽衣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현대/현대
집필자 이하범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사람이 죽어 염습(殮襲)할 때 시신에게 입히는 옷차림.

[개설]

우리나라의 염습 제도는 중국 『예기(禮記)』의 영향을 받았고 14세기부터는 주희의 『가례(家禮)』가 본격적인 조선 시대의 예의 기준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국조 오례의(國朝五禮儀)』의 완성에 따라 사서인(士庶人)의 상례 절차 및 그에 따른 염습의·염습 제구를 신분에 따라 법적으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수의를 입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936년(태조 1)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태자인 마의 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에 서민들이 즐겨 입던 삼베 누더기를 입고 금강산에 들어가자 이후 상을 당했을 대 삼베옷을 입었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유교의 영향으로 매장이 일반화되면서 염습후 수의를 입히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조선 시대 사대부 사이에서는 미리 자신의 묫자리와 수의를 준비하는 풍습이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으며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에서 수의를 구입하곤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수의(壽衣)라는 용어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처음 나오는 때는 1608년(광해군 1)이며, 부의(賻儀)의 뜻으로 사용된 것은 순조 때 염습의(殮襲衣)로 사용된 기록에서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수의를 살펴보면 조선 시대 중기까지는 평상시 입던 의복이나 혹은 새로 장만한 의복을 사용하였고,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염습의 용도로 수의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기에서 현재까지 시대에 따라 옷의 명칭을 바뀌었지만, 생시의 예복을 사용한다는 기본 원칙은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다.

군산 지역에서는 나이가 들어 수의를 만들어 놓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어 나이 든 어른들은 수의를 장만하는 것을 큰일을 치루는 것만큼이나 중요시하였다. 보통 수의는 명주를 겉감으로 하고 삼베를 안감으로 넣어 만들었다.

수의의 품목으로는 속바지와 속저고리, 겉바지와 겉저고리를 비롯하여 버선, 얼굴싸개, 손싸개, 오낭 등이 있고, 입히기 수월하도록 상의와 하의를 구분하여 준비해 두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