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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235
한자 梁一東
이칭/별칭 현곡(玄谷)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조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2년연표보기 - 양일동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3년 - 양일동 중국 망명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양일동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옥구군 위원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54년 - 양일동 제3대 민의원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73년 - 양일동 민주 통일당 총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79년 - 양일동 제 10대 국회의원 당선
몰년 시기/일시 1980년 4월 1일연표보기 - 양일동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3년 - 양일동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양일동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양일동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묘소 양일동 묘소 -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리
성격 독립운동가·정치인
성별
대표 경력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상 국민 회의 대의원|민주 통일당 총재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개설]

양일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상 국민 회의 대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어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까지 5선 의원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활동 사항]

양일동은 중동 학교(中東學校) 재학 시절이던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연루되어 퇴교 당했다. 군산항 부두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1933년 중국으로 망명, 북경 민탁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상 국민 회의 대의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고 일본 이치타니[市谷] 형무소에 수감된다. 복역 2년 8개월 만에 신병으로 가석방, 귀국하여 광복 때까지 고향에서 농촌 운동과 농민 교육에 종사하였다.

1945년 해방 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옥구군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에 입문, 1954년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어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중간에 두 번의 정치 정화법에 묶여 정치 활동을 정지당했다. 제 1 공화국 자유당 때에는 야당계 무소속으로 반독재 운동에 민주당과 행동을 같이했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구 신민당 원내 총무·정무 위원 등을 지냈다. 1973년 중앙 정보부 정치 공작 사건으로 기록된 동경 김대중(金大中) 납치 사건 때 참고인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1971년 신민당 주류의 유진산(柳珍山)과 결별하고 1973년 민주 통일당을 창당, 대표 최고위원과 총재를 지냈다.

[묘소]

양일동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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