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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051
한자 高仁忠
이칭/별칭 기은(箕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고려 후기 - 고인충 출생
활동 시기/일시 공민왕 때 - 고인충 문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조선 전기 - 고인충 사망
출생지 고인충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묘소 고인충 묘소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소룡동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제주
대표 경력 사직(司直)평장사

[정의]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활동한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 문신.

[개설]

고인충(高仁忠)은 고려 후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직, 평장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성계가 조선을 개창하자 고향 옥구로 내려왔다가, 다시 처가(妻家)가 있는 완주군 고산으로 이주하여 생애를 마쳤다. 그러나 현손 고덕령이 다시 고산에서 임피로 입거하여 그 후손들이 임피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여 왔다.

[가계]

고인충의 호(號)는 기은(箕隱)이다. 제주 고씨 옥구 입향조 고돈겸(高惇謙)의 9세손이며. 문충공(文忠公) 고경(高慶)의 현손이다. 문영공(文英公) 고용현(高用賢)의 증손이며, 병부 참의를 지낸 고영손(高永孫)의 손자이고, 예문관 학사를 지낸 고영손(高永孫)의 큰 아들이다. 외할아버지는 통직랑 숭복 판관을 지낸 우유서(禹攸敍)[본관 영천]이고, 장인은 송류(宋琉)[본관 려산]이며, 후처의 아버지는 병사를 지낸 조을정(趙乙禎)[본관 평양]이다.

[활동 사항]

고려 공민왕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직(司直), 평장사 등의 관직을 지냈으며, 관품은 은자광록대부에 이르렀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이유로 고향인 옥구로 내려왔다고 한다. 이후 다시 처가인 평양 조씨(平壤趙氏)들이 살고 있는 고산(高山)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고인충의 묘가 고산[현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 있다. 고인충의 묘역은 처가로부터 상속받은 것이었다.

[묘소]

고인충의 묘는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소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지제교(知製敎) 신응선(申應善)이 지은 비문에는‘나라에서는 충정(忠貞)한 신하요, 집에서는 인의(仁義)를 갖춘 사람이다. 정치가 바르면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물러서며, 임금을 도와 백성을 윤택하게 하였으니, 백세(百世)의 뒤에까지 그 이름이 빛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손 고덕령(高德齡)이 자신의 어머니 광산 김씨를 모시고 고산에서 임피에 입거하고, 그의 후손들이 계속 임피에 거주하면서 임피면 월하리술산리, 대야면 접산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여 왔다. 이들은 자신들을 제주 고씨 사직공파(司直公派)라고 부르고 있다. 사직(司直)을 지낸 고인충을 파시조로 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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