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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면·옥산면두릉두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945
한자 澮縣面玉山面杜陵杜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옥산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두릉두씨 집성촌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지도보기, 옥산면지도보기 일대
소재지 두승손의 묘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고사리 척동 마을 지도보기
성격 집성촌

[정의]

조선 시대 군산[옛 옥구현]에 세거한 두릉두씨 집성촌.

[개설]

두릉두씨(杜陵杜氏) 집성촌의 기원은 15세기에 두승손(杜承孫)이 만경에서 옥구로 이주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두승손의 후손들은 회현면 금광리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여 왔다.

[명칭 유래]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집성촌이 형성된 금광리는 조선 시대 옥구현 장제면 지역인데, 조선 말기 군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원당리, 금당리, 광지산리와 월평리, 대지산리, 월하산리의 각 일부와, 풍면 전전리, 학당리 일부를 병합하여 금당과 광지산의 이름을 따서 금광리라고 하고 회현면에 편입되었다.

[형성 및 변천]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에서 병부 상서를 지낸 두경령(杜慶寧)이다. 두경령은 성품이 강직하여 황제에게 직언을 하자 다른 관리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고 두 아들을 대동하고 배를 타고 고려 궁지현에 도착하였다. 궁지현은 조선 시대 만경현이다. 고려 정부에서는 두경령에게 만경 일부를 식읍으로 하사하였고, 두릉군으로 봉하였다. 두경령의 11세손인 두승손(杜承孫)이 만경에서 옥구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회현면, 옥산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두승손은 조선 태종 조에 병마우후를 지냈으므로, 두승손이 옥구로 이주한 시기는 15세기 초엽이라고 판단한다. 두승손의 묘는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고사리 척동 마을에 있는데, 거기에는 두승손의 묘 외에도 남원 양씨 입향조 양의생의 묘, 담양 전씨 입향조 전윤평의 묘, 광산 김씨 입향조 김덕양의 묘 등이 있다. 곧, 고사리 척동 마을은 당시 사람들로부터 명당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현황]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두릉두씨회현면 금광리 일대에 58가구 271명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월명 마을 11가구 53명, 광지산 마을 12가구 79명, 원당 마을 17가구 58명, 금당 마을 5가구 22명, 신기촌 마을 5가구 24명, 옥흥 마을 8가구 35명이다. 또한 옥산면 일대에도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는데, 옥산면 당북리 원당 마을에 21가구 93명, 금성리 금성 마을에 16가구 69명이 각각 살았다고 한다. 한편 두승손 외에 두승손의 숙부 두장의 후손들도 두장이 고려 말에 옥구에 입거한 이후 군산에서 세거하여 왔는데, 후손들의 수는 두승손의 후손들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다.

현재 군산 지역 두릉두씨 집성촌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9.12 항목명 수정 항목명에서 일대 삭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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