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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면·대야면 평산조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926
한자 聖山面大野面平山趙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두헌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임피현]에 세거한 평산조씨 집성촌.

[개설]

16세기 전반에 임피에 입거한 조침의 후손들에 의해서 형성된 집성촌이다.

[명칭 유래]

여방리 수심 마을에는 평산 조씨들이 처음 정착했으며, 이후 신천 강씨들이 정착하였다고 한다. ‘수심(修心)’은 마음을 닦는다는 뜻으로 불자들이 많이 살았던 이유로 붙여진 이름이다. 1200년 전에 형성된 석실 고분도 있고, 오성산의 큰 물줄기가 내려오다 장구 모양으로 멈추었다 해서 장구산이라고 불리는 산도 있으며, 많은 절들이 세워졌다.

[형성 및 변천]

16세기 전반에 통덕랑을 지낸 조침(趙琛)[1479~?]이 김제에서 임피에 입거하였다. 조침평산조씨 시조 조웅(趙雄)의 17세손이며, 충정공 조숭헌(趙崇憲)의 손자이다. 조침이 임피에 입거한 이후 그의 후손들이 성산면 일대에 집성촌(集姓村)을 이루며 살아왔다. 이들은 자신들을 평산조씨 충정공파라고 불러왔다. 그 이유는 조침의 조부 조숭헌(趙崇憲)이 충정공이기 때문이다.

[현황]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평산조씨성산면 성덕리 일대에 24가구 70명, 도암리에 5가구 30명, 고봉리에 9가구 40명, 창오리에는 9가구 40명, 여방리에 10가구 40명이 살았다고 한다. 또한 서수면 서수리에도 7가구 29명, 임피면 술산리에도 3가구 7명이 살았다고 한다. 현재 평산조씨 집성촌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알기 어렵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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