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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학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503
한자 養英學校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인가 시기/일시 1933년연표보기 - 양영학교 설립 인가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4년 4월 1일 - 양영학교 주야간 분리 교육
성격 사립 교육 기관
설립자 군산 노동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시 지역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변천]

양영학교는 1917년 군산 유지들의 기부로 군산공립보통학교의 교실을 활용하여 설립된 군산청년야학에 연원을 가지고 있다. 군산보통학교는 군산항의 시민들이 설립한 군산의숙을 모태로 하였고 학교 운영에서도 시민들의 지원을 받아 주민들의 영향력이 강했으므로 이곳에서 야학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군산청년야학은 1932년 경에 이전기지를 매수하여 1933년에 교사를 신축하였다. 종래 군산청년야학교는 주로 학령이 초과한 남자를 대상으로 하였는데, 1933년 6월 6일부터 여자부도 증설하여 3년 동안 보통 학교 학력 수준의 교육을 하는 등 교육 활동을 확대하면서 교명을 양영학교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교사(校舍)를 신축하기로 하고 기부금과 지방비 등 3,000원을 지원받아 새로운 교사를 건립하기도 했다.

양영학교는 일제의 전시 체제하에서도 군산 시민의 지원으로 지속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939년에는 회갑연을 폐지하고 그 돈 중 일부를 양영학교에 기부한 기록이 보이며, 1940년 소화권번의 사장 박재효는 장래에 자신이 작고한 후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의 1/3을 양영학교에 기증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상황 속에서도 군산 시민들은 힘을 합하여 군산의 무산아동교육의 맥을 이어갔으며, 양영학원은 일제강점기 군산의 무산아동교육의 맥을 최후로 이은 대표적인 학교였다고 평가된다.

[교육 활동]

1934년 4월 1일부터 주간, 야간을 분리해 교육하였다. 주간은 여자부로 야간은 남자부로 각각 생도수가 약 200명씩인데 무산 아동 교육 기관인 만큼 4년제로 교사 4인이 복식으로 주간과 야간에 가르쳤다. 야간은 남자부 5할 이상이 순전히 어린 고학생이었다고 한다. 양영 학교의 교사들은 4학년제의 불충실한 교육을 보완하기 위하여 여름 방학에도 남녀 학생들에게 40일간 매일 아침 8시에서 10시까지 실용적인 산술법과 조선어로 일상 서간문 기사를 가르쳤으므로 군산 시민들은 교사 4인의 무산 아동을 위한 희생적인 교육 활동에 감사와 칭송을 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3.06 정의 변천 수정 정의 변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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