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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438
한자 沃溝縣
이칭/별칭 마서량현,옥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김종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 - 마서량현에서 옥구현으로 개정
개정 시기/일시 1895년연표보기 - 옥구현에서 옥구군으로 개정
관할 지역 옥구현 - 전라북도 군산시

[정의]

757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 지역에 설치하였던 행정 구역 명칭.

[개설]

옥구현은 1995년 통합 이전 군산시 일대와 현 군산시 옥구읍·옥서면·옥산면·회현면 일대 지역이다. 백제 시대에는 마서량현(馬西良縣)이라 불렸다. 통일 신라 시대 전주(全州) 임피군(臨陂郡)[현재의 군산시 임피면 일대 지역] 관할 아래 있던 3개 현(縣)[함열현, 옥구현, 회미현] 중의 하나로 조선 시대까지 현 단위의 지역 행정 명칭을 유지하였다.

옥구는 연해(沿海)의 요해지(要害地)였다. 삼국 통일기에 당나라는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 도독부를 설치하려 하였는데, 그 때에 마서량(麻斯良)에 귀화현(歸化縣)을 세우려 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마서량(麻斯良)은 옥구의 옛 지명인 마서량(馬西良)의 이칭(異稱)으로 파악된다.

통일 신라기의 군현제 형태는 고려 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만 고려 때에는 임피군임피현으로 등급이 떨어지고, 임피현의 속현이 회미현, 부윤현, 옥구현, 만경현 등 4개의 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까지 옥구현은 계속해서 임피현의 속현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고려 말에 이르러 옥구 지역으로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옥구의 위상이 달라진다. 왜구는 13세기 초부터 우리나라에 침입하여 약탈 행위를 일삼았는데, 14세기 중반에 들어서 왜구의 침입은 더욱 빈번해지고 규모도 커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1380년(우왕 6) 8월 왜구들은 500척에 이르는 대선단을 거느리고 옥구 북쪽에 자리한 진포로 침입해 왔는데, 왜구의 수는 10,000명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왜구의 대함대를 도원수 심덕부, 상원수 나세, 부원수 최무선이 이끄는 고려 함대가 화약 병기를 사용해 궤멸시켰다. 이것이 그 유명한 진포 대첩이다. 진포 대첩 이후 왜구의 침략 루트인 옥구 지역은 국방상 중요 지역으로 부각된다.

조선 개국 직후인 1397년(태조 6)에 조선 정부는 각도에 종 3품 첨절제사[태종 이후부터는 병마사(兵馬使)로 불림]가 관할하는 2~4개의 진(鎭)을 설치하였다. 이때에 전라도에는 옥구를 비롯하여 목포, 조양, 흥덕에 진을 설치하였다. 고려 시대까지 임피현 속현으로서 지방관조차 파견되지 않던 옥구 지역이 종 3품 첨절제사 상주하는 진으로 격상된 것이다. 첨절제사는 현령, 현감의 업무인 수령직[목민관]도 겸하였다.

1455년(세조 1)에는 북방의 군익도 체제(軍翼道體制)[각 도를 몇 개의 군익도로 나누고 각 군익도를 중·좌·우 3익으로 편성하는 군사 조직 체제]를 전국에 확대하면서, 내륙에 거진(巨鎭)을 세워 주변 고을을 분속시켰는데, 이때 옥구진(沃溝鎭)은 3익(翼) 중에 거진[옥구진: 중익-옥구-, 좌익-함열·용안-, 우익-임피-]으로 중익(中翼)에 편성되었다.

군익도라는 획기적인 군사 조직 체계 개혁이 있은지 2년 뒤인 1457(세조 3) 10월 군익도 체제는 진관 체제(鎭管體制)로 개편되었다. 진관 체제는 전국 각지의 요충지를 거진으로 해서, 거진의 군사 기지로서 거점적 성격을 분명히 하고 나머지 주변 지역의 진들이 거진에 소속되도록 한 것이다. 옥구진은 기존의 군익도 체제에서 거진의 자리를 전주에 내주고, 진관체제가 완성되는 1467년(세조 13)에 혁파되어 전주진관(全州鎭管)에 속하게 된다. 아마도 거진인 옥구진이 없어지는 1467년 이후 부터 옥구현에는 병마사 대신 종 6품 현감(縣監)[병마 절제 도위 겸임]이 임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옥구현은 1895년(고종 32) 5월, 8도(道) 체제를 해체하고 23부(府)체제로 개정하면서 옥구군(沃溝郡)으로 개칭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에는 임피군, 함열군의 일부 지역, 고군산 군도, 비안도, 어청도 등을 옥구군에 편제하면서, 옥구군은 10개 면을 관장하였다. 그 뒤에 옥구 지역은 여러 번의 행정 개편을 거쳐 군산과 일부 지역이 익산에 나뉘어 통합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통일 신라 경덕왕은 전제 왕권 강화를 위해 757년(경덕왕 16) 기존의 중앙 관부명과 관직명 , 지방 9개주와 각 군현의 고유 명칭을 모두 없애고 한자식으로 바꾸었는데, 이때 백제식 행정 구역 명칭인 마서량현도 옥구현으로 개정되었다.

1895년 5월 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와 일본은 조선의 지방 제도를 근대적으로 개편한다는 미명하에 8도 체제를 폐지하고 23부(府)를 실시하였는데, 이때에 옥구현옥구군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23부제는 1년 만에 폐지되고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옥구군은 전라북도 소속이 되었다. 이후 1899년 옥구부로 승격되었다가, 1902년 옥구군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행정적 목적에 따라 몇 차례의 개편이 시도되면서 옥구군 역시 명칭 개정을 반복하였다. 1995년 군산에 통합되었다.

[관련 기록]

옥구현의 유래와 행정 구역 소속, 명칭의 변화는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 실록 지리지』, 『신증 동국 여지 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옥구현 읍지(沃溝縣邑誌)』, 『건치 연혁고(建置沿革攷)』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세종 실록 지리지』, 『옥구현 읍지』를 통해 현의 연혁 및 행정 구역의 특징, 자연 환경, 인물, 토성(土姓), 군정(軍丁), 토산(土産), 토공(土貢) 등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다.

[내용]

『세종 실록 지리지』에 등재된 옥구현의 영역은 치소에서 동쪽으로 임피현 경계까지 15리,서쪽으로 해안까지 13리, 남쪽으로는 고사포까지 5리, 북쪽으로는 해안까지 11리이다. 이후 중종 대에 편찬된 『신증 동국 여지 승람』에는 치소에서 동쪽으로 임피현 경계에 이르기까지 15리, 남으로 임피현 경계에 이르기까지 13리, 북으로 서천군 경계에 이르기까지 19리, 서쪽으로 해안에 이르기까지 27리 서울과의 거리는 523리로 쓰여 있다.

영역의 변화는 조선 후기에도 큰 변동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읍지 상송령에 따라 전국의 각 군현에서 보낸 읍지를 모아 엮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치소에서 동쪽으로 임피현 경계까지 15리, 서쪽으로 해안까지 15리, 남쪽으로 만경현 경계까지 20리, 북쪽으로 충청도 서천현 경계까지 20리로 기재되어 있다.

군현 아래의 행정 구역에 대해서는 18세기에 만들어진 『여지도서』와 『호남 읍지(湖南邑誌)』에 처음으로 보인다. 두 자료를 통해 볼 때 옥구현에는 동현내면(東縣內面), 박지산면(朴只山面), 풍촌면(風村面), 장제면(長梯面), 서현내면(西縣內面), 정지산면(定只山面), 미제면(米堤면) 등 총 8개면이 있었다.

정조 때에 편찬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도 각 면별로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데. 동면, 박면, 풍면, 장면, 서면, 정면, 미면 등 8개면 83개의 리가 편제되어 있었다. 이런 구성은 19세기에 작성한 읍지에도 동일한 내용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까지 행정 구역의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변천]

대부분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옥구현은 본래 백제의 마서량현이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옥구현으로 바뀌고 임피군의 관장을 받았다 옥구현이라는 명칭은 이후 조선 시대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옥구현은 1403년(태종 3) 군사적 중요성으로 말미암아 회미현(澮尾縣)을 속현으로 삼았다.

반면 『건치연혁고(建置沿革攷)』에서는 옥구현이 문창현으로 한차례 더 변천하였다고 추가로 기록하였다. 『건치연혁고』에 따르면 백제의 마서량현은 신라 때 문창현(文昌縣)으로 개정되었는데, 이 문창현에 대하여 오늘날 내초도(內草島)[현재 군산 내초도동]라고 주석하였다. 문창현으로의 개정 사실 여부와 그 개정이 경덕왕 이전인지 이후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조선 시대 이후 문창현이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과 관련된 곳으로 거론되고 있어 주목된다.

옥구현은 1895년(고종 32) 23부(府) 제도 실시를 계기로 전주부의 관할을 받는 옥구군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23부제는 1년 만에 폐지되고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옥구군은 전라북도 소속이 되었다. 이후 1899년 옥구부로 승격되었다가, 1902년 옥구군으로 개편되었고, 다시 1906년 옥구부로 승격하였지만 군산부가 새로 설치되면서 군산부에 편제되었다.

1914년 옥구군에는 임피군, 함열군 일부와 고군산 군도, 비안도 어청도 등이 통합, 편입되었다. 그 후 여러 번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옥구군 일부는 군산시에, 일부는 익산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군면 통폐합시 옥구면으로 개칭되는 등 이후로도 몇 차례 행정적 편제 변화에 따른 명칭 개정이 있었다. 현재의 행정적 명칭은 군산시 산하 옥구읍·옥서면·옥산면·회현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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