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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022
한자 -太陽光-新再生-地域産業-變遷-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김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99년 - 군산항 개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8년 - 군산 임해 산업 단지 착공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8년 - 군산 국가 공단 조성 사업 착공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1년 - 새만금 간척 사업방조제 공사 착공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3년 - 군장 국가 공단 착공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5년 - 국가 산업 단지 혁신 클러스터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 새만금 내부 토지 이용 계획 기본 구상 발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8년 - 국가 산업 단지 혁신 클러스터 시범 2단계 사업 시작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 새만금 방조제 개통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산업 변천의 역사.

[개설]

금강, 만경강의 수운과 그 사이에 펼쳐진 비옥한 평야 등에 힘입어 일찍부터 경제 사회의 발전을 이루어 온 군산 지역은 특히 1899년 개항 이후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전라북도 지역 산업발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후 지역 산업 경제의 전개 가운데 개항 115년, 이른바 새만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해방 전후의 격동기를 뒤로 하여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군산 지역의 산업 발전은 외항과 군산, 익산, 전주를 연결하는 산업 단지, 간척 사업 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로써 농업과 경공업에 눌려 늦어졌던 지역 발전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당시 기업들은 전근대적인 노동 집약적 업체들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후 1970년대에 들어 군산 지역은 항구 도시로서 원자재의 수입과 제품의 대외 수출에 유리한 입지 조건을 토대로 전북 지역의 경제 발전을 견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입지 조건 속에서도 지역의 산업 단지는 뒤늦게 조성되어 낙후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1978년 군산 임해 산업 단지가 착공되어 유수 기업들이 입주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 시기까지 지역의 기업체는 대부분 섬유, 음식료품, 제지, 목재 및 가구 제품 등으로 기술의 유발이나 부품 생산 개발의 연관 효과가 적은 업종들이었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 군산 지역의 공업이 양적인 성장을 거듭하지만,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매우 낮았다.

그렇게 본다면 군산 지역 공업계에 기계, 자동차 공업 등 조립 기계 공업의 비중이 급성장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자동차 산업이 현재까지도 전라북도의 핵심 전략 산업이라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그 비중은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규모 자동차와 조선소가 건설, 가동되면서 이와 전후방적으로 연관된 기계, 전기, 전자, 소재, 조선을 비롯하여 태양광, 풍력 등 기반 기술 산업의 전반에 영향을 미쳐 전북 지역 산업 발전의 핵으로 자리 잡아 지역 발전의 미래를 이끌 지역으로 기대되고 있다.

[근대 산업의 태동]

개항에서 해방에 이르는 시기, 군산 지역은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하였다. 즉 1899년의 개항과 이후 식민지 시대에 이 지역이 경험했던 수탈과 개발이라는 이율 배반의 역사는 지역 사회 경제사의 전개에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주지하듯이 군산항은 천혜의 입지 조건과 그 배후에 국내 유수의 곡창 지대라 불리우는 호남 평야가 광활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기타 서남해안에 이에 버금갈 양항이 없고, 또 중국 대륙과의 교역에서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1899년 5월 1일 일본에 의해 개항되었다.

1899년 개항 이래 군산 지역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진출하여 1913년에는 거의 조선인의 수와 버금갈 정도였다. 또한 전주에서 군산을 잇는 호남 평야 지대는 일본의 광범한 토지 수탈과 집중적인 미곡 수탈의 직접적 대상이었다. 이들 지역에는 이미 일본의 침략 초기인 1900년대 초기부터 대규모의 일본인들 농장과 대단위 간척 농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렇듯 당시 일본인들은 이 지역 평야부의 토지들을 대부분 차지하며 지역 지배를 강화하고 있었고, 나아가 쌀 수탈 전위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이와 같은 조건 속에서 이들 지역에는 원활한 농업 수탈의 길을 확보하기 위해 도로 확충과 수리 관개 시설 및 철도 건설이 이어졌고, 나아가 군산항을 중심으로 항만 시설이 새롭게 조성되고 정비되어 나갔다. 당시 군산항은 전라북도 지역에서 생산된 미곡뿐만 아니라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지역에서 생산된 미곡의 대일본 수출항으로서 목포, 원산과 함께 대표적인 식량 공급 기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쌀의 반출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33년에 이르러서는 전국 쌀 생산량의 53.4%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이로써 군산항은 쌀 반출항으로서 상대적으로 붐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군산의 붐은 조선 민중의 것이 아닌 바로 일본인들의 것이었으며, 따라서 지역민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과 굴욕의 역사를 강요하고 있었던 성격이 강하다.

이 시기 식민지 정책의 또 다른 측면에서는 식민지 공업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당시 일제는 원활한 전쟁 수행을 위해 조선의 공업화 방향을 군수 공업에 집중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일제의 공업화 정책은 조선에 대한 고려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을 식량이나 원료의 공급 기지로 삼아 자국의 내적 모순을 식민지 조선에 전가시키고자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공업화와 함께 추진되어온 식민지 도시의 성장은 그야말로 일제의 필요에 따라 구성되고 개발되면서, 착취의 전진 기지 혹은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일제 강점기의 도시화는 식민지 경영을 위한 보다 적합한 도시 공간을 창출하고자 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식민지 시대 도시들의 역할 수행은 군산항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즉 1920년대에 이르러 군산 지역에도 일제의 자본 축적을 위한 근대적 공장이 신설되고 일인 경영의 기업들이 설립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군산의 제조업은 정미와 양조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는데, 이것은 이 지역이 바로 전국 최대의 곡창 지대였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군산 지역의 제조 업체는 18개에 달했으며 이들은 정미와 양조를 중심으로 발달했고, 그 밖에 철공소, 농구 제작, 고무 공장, 연와 공장 등이 있었으나 그 규모는 비교적 영세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후 1930년대 들어서면서 조선은 일본 독점 자본의 본격적인 진출과 함께 극단적인 수탈 경제 체제로 들어서게 된다. 이 시기 세계 경제는 대공황기에 접어들고 있었으며, 일본 경제 역시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일본은 이러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새로운 이윤 획득을 위한 방편으로, 1931년 「주요 산업 통제법」을 공포하면서 자유 경제에서 통제 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군산 지역의 식민지 말기 공업 역시 그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군산 지역에 존재했던 회사들의 대부분은 일본 자본의 집중적인 투자와 진출을 통해 이루어졌으나, 업종에서는 역시 본격적인 중공업 부분이 아닌 경공업에 해당하는 비교적 소규모의 전근대적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귀속 재산 처분 과정에서 전라북도의 귀속 기업체 219개 가운데 군산이 67개 업체로 그 비율이 매우 높은 것은, 당시 군산의 산업이 비록 일본 독점자본에 의한 것이었긴 하지만 어느 정도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이 가운데 1932년에 세워진 경성 고무는 한국인 기업가에 의해 설립된 유일한 중소 기업체였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에 수탈과 개발이라는 당시 군산 지역 경제의 이율 배반적 성격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군산 지역 경제의 전개]

1945년 해방에서 1950년대 말에 이르는 시기, 군산 지역 경제는 기본적으로는 식민지 구조의 단절과 함께 성장의 한계를 안고 있기는 했지만, 특히 정부 수립 이후 줄곧 인접 도시들보다 우세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전국적인 수준에서도 상대적으로 낮지 않은 상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 바로 이 시기 군산 지역 경제의 단절과 연속이라는 이중적 성격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군산 지역 경제는 여타 지역 등과의 격차가 계속적으로 심화되면서 침체 일로를 걷게 되며, 이러한 추세는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 발전이 체계화되는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간다.

즉 군산 지역은 식민지 도시 성장의 기초를 제공한 고도 밀집 도시로서 그러한 영향은 196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어, 1965년의 경우 인구 생태적 집적 순위 전국 3위를 기록할 정도였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 군산시를 비롯한 전라북도 지역 전체가 국가의 지역 편향적 발전 정책의 소외 지역으로 전락하면서, 군산 지역의 경제적, 인구 생태적, 그리고 사회적 자원의 집적도가 매년 커다란 폭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러한 가운데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국가 차원의 산업 구조 조정 정책과 서해안 개발사업 계획이 발표되면서 군산 및 주변 지역은 커다란 성장의 관심 지역으로 대두되기 시작한다.

서해안 개발 사업은 1989~2001년간 총 20여 조 원을 투자하여 산업 기지 건설, 공단 확충, 상하수도 건설, 수자원 개발 등을 목적으로 실시되는 개발 계획이다. 즉 서해안 개발 사업은 동남권에 비하여 크게 낙후되어 있는 서해안 지역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신규 사업[약 17조원 투자 계획]과 이미 시행 중이거나 시행이 확실시되고 있는 사업[약 5조 원 투자 계획] 등 100여 개 이상의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전라북도 관련 사업은 30여개 사업으로, 총 4조 5백억여 원이 투자될 계획이며, 이 가운데 72%에 해당하는 3조여 원이 군산 및 인근 지역의 개발을 위하여 투자되었다. 이는 곧 군산 지역 개발 계획이 서해안 개발 사업 전체의 핵심적인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해안 개발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 가운데 군산시 발전 구조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업은 무엇보다 군산 국가 공단 및 군장 국가 공단 조성 사업이다. 물론 금강 하구둑과 외항 건설 사업이 본격화되었던 1980년대 중반부터 전라북도와 군산시는 군산 지역을 전라북도 공업화의 핵심 지역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즉 전라북도 차원에서도 군산 지역은 중화학 공업 및 수출항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는 공업 도시로 육성한다는 프로그램을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결국 군산 지역의 이러한 산업 육성 프로그램은 군산시가 서해안 개발 사업의 중심 도시로 부상하면서 더욱 촉진된 것이다.

결국 전라북도와 군산시는 해안 간석지를 이용하여 공단을 조성할 수 있도록 구 옥구군 해면을 산업 기지로 지정하여 줄 것을 중앙 정부에 건의하였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1987년 8월 전라북도 옥구군과 충청남도 서천군 일부 해면을 산업 기지로 확정 및 고시하였다. 이후 정부는 서해안 개발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전라북도 군산과 충청남도 장항을 잇는 군장 국가 공단 조성 계획을 확정 및 고시하였다. 결국 군산 국가 공단 조성 사업이 1988년에 우선 착공되었고, 이어서 1993년에 군장 국가 공단이 착공되었으며, 나머지의 계획 사업은 1995년 이후 단계적으로 실행되어갔다.

[새만금 사업과 군산 지역 경제]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서 2000년대 이후 지금에 이르는 군산의 산업과 경제를 어떻게 성격 지을 수 있을까. 또한 향후 발전 추세는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아직 섣부른 측면도 있지만 2000년 이후 군산 지역 경제의 성격은 비전과 성숙의 시대[2000년~ ]라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1990년대 후반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해 가며 이른바 새만금 사업과, 새만금-군산 경제 자유 구역 지정, 군산 및 군장 국가 산업 단지의 활성화 등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새로운 비전을 만들며 성숙을 위한 준비의 단계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첫째 새만금 간척 사업의 진척을 들 수 있다. 즉 새만금 간척 사업은 1991년 11월 방조제 공사의 착공으로 시작되어 담수호 수질, 갯벌 보전 등의 환경 문제가 제기되면서 공사 진척에 어려움을 겪어 왔으나, 2006년 4월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다. 특히 2009년 말에는 방조제가 개통됨으로써 본격적인 내부 개발이 실시되었는데, 401㎢에 이르는 내부 지역의 이용에 대하여서는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2007년 4월 농지 70%, 기타 용지 30%를 근간으로 하는 「새만금 내부 토지 이용 계획 기본 구상」으로 발표되었다.

이후 시대 변화에 따라 농업 용지 위주의 기존 계획 수정이 불가피하여 「새만금 내부 토지이용 계획 기본구상[2007. 4]」의 토대 위에서 다목적 개발로의 전환이 제시된다. 즉 2008년 10월 새만금 개발 기본 구상 변경(안)의 방향에 따라 기본 구상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과 보완 대책을 담아 총리실 및 관계 부처 합동으로 새만금 내부 개발 기본 구상 및 종합 실천 계획(안)이 마련되었다.

둘째 새만금·군산 경제 자유 구역의 지정을 들 수 있다. 즉 새만금 사업의 진척과 함께 새만금·군산 경제 자유 구역을 비롯하여 황해, 대구, 경북 등 3곳이 새롭게 경제 자유 구역으로 선정되었다. 그 구역은 새만금 산업·관광 지구와 군장 국가 산단 지구, 고군산 군도 지구, 배후 도시 지구 등 4개 지구로 총 96.38㎢이며 동아시아의 미래형 신산업과 관광 레저 산업의 허브로의 육성 비전을 갖고 동북아 거점으로서 국가의 위상 제고와 신성장 동력 창출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지역 산업의 미래 발전 과제]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반도 남쪽 서해안의 한 가운데, 금강만경강의 하구에 위치한 군산 지역은 그 지정학적 여건으로 인하여 1899년 개항과 함께 쌀의 유출항이자 상공무역을 중심으로 한 식민지 도시로 발전하여, 한 시기 우리나라의 주요한 경제 도시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45년 해방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의 20여 년 동안, 본격화된 국가 차원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의 강한 지역 편향성으로부터 소외되어 상대적·절대적 저발전의 길에 들어서 있었다.

한편 1980년대 중반 이후 극심한 경제적 지역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정치적 관심과 대사회주의권 무역의 활성화를 위한 무역 전진 기지의 개발이라는 정책적 필요성이 적절히 맞물리면서 군산시의 개발 가능성은 다른 어떠한 서해안 도시 지역보다도 가시적으로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른바 IMF 경제 위기 이후 지역 경제는 격심한 구조 조정을 겪으며 일시적인 침체를 경험했지만, 2000년대에 들어 회복세를 유지하며 새로운 비전과 성숙을 준비하는 시대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군산 지역 발전을 위한 미래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 서해안권의 자동차 기계 부품 및 조선 기재 산업의 광역적 생산 기지로 웅비하는 것이다. 즉 해방 이후 60여 년의 군산 지역 주요 산업 발전의 과정을 회고해 보면, 우선 식민지 공업화의 유산을 안은 채 정미, 목재, 식료품업을 비롯한 귀속 산업체를 중심으로 공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그 특징을 보면 우선 공업 분야의 경우 중화학 공업보다는 저부가가치, 영세성, 노동 집약적인 경공업이 대종을 이루는 중소 기업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군산 내항과 공항, 철도 등 한 시기 지역 경쟁력의 상징이었던 사회 간접 자본 시설이 있기는 했지만 역시 취약한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지역 산업 발전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첨단 부품 소재와 산업 기반 시설의 확대 및 물류 단지 조성 등 이른바 환황해권 대중국 글로벌 생산 및 물류 기지의 구축이 주창하고 있다.

특히 경인권을 중심으로 성장하기 시작해 영남권이 주도했던 국내 자동차 산업이 어느덧 전북을 중심으로 하는 서해안 오토 벨트에서 용틀임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이는 1990년대 대우 자동차 군산 공장 입주 등이 그 발판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제 의젓한 전라북도의 전략 산업으로 선정될 만큼 자동차 부품과 기계 부품 산업은 전라북도의 미래를 담보하는 핵심 산업으로 기대를 모으게 됐다.

현재 전라북도에는 3개사의 완성차 공장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은 완성차에 직접 납품하는 1차 부품 공장과 2차 이하 부품 업체가 극히 빈약하여 그만큼 부품 업체의 유치와 육성, 신기술 개발과제 등 절실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군산의 GM 대우 공장, 타타 대우 상용차 등 대단위 3개 완성차 공장을 중심으로 전략 산업으로서 대대적인 육성책이 뒷받침되고 있으며, 자동차 기술원, 자동차 부품 관련 지역 기술 혁신 센터[TIC]가 군산 대학교 등에 설치되어 중소 부품 업체의 기술 및 벤처 창업 지원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05년부터 전국 7개 지역 가운데 군산이 자동차 부품 산업을 중심으로 국가 산업 단지 혁신 클러스터 시범 단지로 지정돼 그 기능과 파급 효과가 기대되고 있고 2008년부터는 2 단계 사업[2008. 4~2010. 3]이 추진되었다.

또한 국내 굴지의 자동차 기계 부품 회사를 비롯하여 현대 조선소 등이 지역에 터를 잡아 새로운 기술을 선도할 연구 개발과 시설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자동차 기계 부품 및 조선 기자재 산업을 통해 미래 발전을 활짝 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나아가 태양광과 풍력[해상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둘째, 지역의 상업 서비스와 금융 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즉 지금은 왜소화 된 지역의 상업과 재래 시장이지만, 그래도 시장은 늘 지역의 역사,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종합적 소산으로서 경제 활동의 요람이었다. 특히 1899년 개항된 항구 도시이자 1945년 광복 이후 수출입항으로서 한 시기 각광을 받아 왔던 군산의 상업과 금융업은 지역 불균형 성장으로 인한 현대적 상거래 및 금융 활동을 수용할 수 없게 됨으로써 긴 기간 불 꺼진 항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1970, 1980년대 합판 공업이 활성화되면서 활기를 되찾고 근래에는 군산항의 활성화를 통해 잃었던 빛을 다시 찾기 위해 고심중이다.

반면 지역의 금융, 유통업을 보면, 역내 보유 자금이 금융망을 통해 중앙에서 운용되고 있고 중앙 대형 유통 업체 및 도민들의 왜곡된 소비 행태로 지역 자금이 유출되는 악순환 구조에 놓여 있다.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방의 빈곤 현상은 자금 흐름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연간 수 조원의 지역 자금이 역내에서 유통되지 않고 중앙에서 운용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원정 쇼핑과 대형 할인점 등을 통해 지역에서 이탈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금이 융통되는 것을 금융이라 하기 때문에, 금융 산업은 자금의 원활한 흐름을 위한 서비스 산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 발전상 금융의 주된 역할은 가계 부문의 저축과 기업의 투자를 연결함으로써 산업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지역 금융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실물 경제의 성장 및 구조 개선이 이루어져야한다. 즉 실물 경제의 제약 속에서 금융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 금융의 육성을 위한 노력은 금융 구조 자체의 개선 뿐 아니라 지방 산업의 구조 고도화, 지방 중소 기업의 육성 및 실물 경제 기반을 강화하는 노력과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개항 115년을 지내며 지역 발전의 한 차원 높은 비약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만드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각 지역은 나름의 전략 산업을 정해 지역 발전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군산 지역의 성장 산업으로는 자동차 기계 부품과 해양 조선 기재 산업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새만금 산업 단지새만금-군산 경제 자유 구역[SG-FEZ] 등을 활용하여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문화·관광 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즉 동북아 환황해권 시대를 맞이하여 군산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여건과 강점을 살려 전략 산업을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전들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국정 과제 및 국가 단위 중장기 계획에의 반영을 위한 설득적인 논리 개발과 다각도의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군산 지역이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를 선도할 수 있도록 역량을 총결집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동북아 환황해권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경제의 분업 구조는 물론 국내 분업 구조상의 적절한 자기 위치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전라북도 내의 성장 동력 산업과 기업의 활로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창조적 인재를 길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역사 문화와 생태 환경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어메니티(Amenity) 군산을 표상하는 미래 산업을 창출시켜 나가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역내 균형 발전과 상대적 소득격 차의 축소, 삶의 질의 개선, 최적 인구 대책, 정체성(Identity)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역 발전의 중장기 좌표와 지침을 재검토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진지한 자기 성찰과 고민을 토대로 지역 발전의 혁신 요소에 대한 종합 조사와 설득적인 지역 발전 논리를 개발하고, 역량 강화를 위해 제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주지하듯이 한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 발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물질적 조건만이 아니다. 아무리 물적 자본이 풍부해도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빈약하다면 진행 과정에서 사상누각이 되고 만다. 그만큼 열린 시민 의식과 상호 간 신뢰감의 회복 속에서 진정 호감을 자아내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개항 115년, 지난기간 지역 상공업을 이끌어 온 주요 인물들 뿐 아니라 묵묵히 지역발전의 초석을 닦은 시민들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와 함께 미래를 염원하며, 지역 발전을 가꿀 수 있는 산관학연의 소통과 상생 전략 및 전략적 네트워크 구축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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