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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서 명량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다 지친 명량산」은 형제산 중에서 동생 산이 이곳에 위치하게 된 산악전설이다. 이를 「울다 지친 울엉산」이라고도 한다. 김제시 서남쪽 죽산에서 서해 바다 쪽으로 2㎞ 지점에 명량산(鳴良山)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지형적으로 봐서 바닷물이 밀려드는 갈잎 속의 진흙땅이어서 산이 있을 만한 곳이 못 된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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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년 조정래가 전라북도 김제시 김제평야를 배경으로 쓴 대하 역사소설. 작가 조정래는 1990년 12월 11일부터 『아리랑』을 『한국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95년 8월 해방 50주년을 맞아 12권을 완간하였다. 1998년에는 『아리랑』 프랑스어판 제1부 3권이 4월 말에 아르마땅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제1회 노신(魯迅)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00년에는 『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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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은 김제시에서 국도 23호선을 따라 죽산면 소재지를 향하다 보면 좌측의 홍산[홍지뫼] 서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풍수적으로 기러기가 내려앉은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홍지뫼가 마치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오랜 세월 벼농사가 근간이었던 이 마을은 인근에 위치한 벽골제가 말해 주듯 옛날부터 대규모로 벼농사가 이루어졌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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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순[1928년생] 할머니는 새벽 4시면 일어나서 교회로 향한다. 4시 반에 열리는 새벽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2년 동안 권사로 활동했던 할머니는, 지금도 명예권사로 신앙을 권유하는 일과 교회 안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내촌마을에는 나정순 할머니 외에도 여러 할머니들이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할머니들에게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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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서 백산면을 지나 공덕면까지 연결되는 국도.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서 김제시를 경유하여 충청남도 천안시까지 이르는 총 길이 394.1㎞의 일반국도이다. 전라북도 구간은 부안군 장동리에서 진입하여 김제시 죽산면, 백산면, 공덕면을 지나 만경강을 건너 군산시 오산면과 연결되는 22.12㎞이다. 왕복 2차선은 1.10㎞, 왕복 4차선은 22.12㎞이고,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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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제시 죽산면에서 활동한 의병. 김성언(金成彦)은 1847년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동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 마을에서 훈장으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06년 국운이 기울자 창원과 거창 등지에서 왜병과 항전하는 등 용맹을 떨쳤다. 그러나 왜병의 감시와 핍박이 심해지자 가족과 가산을 버려 둔 채 고향을 떠나 김제의 죽산면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은둔 생활을 하면서 비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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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종신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한 가옥. 김제 종신리 한·일 절충식 가옥은 1936년경 전라북도 김제에 있었던 일본인 농장인 이시카와[石川] 농장에 지어진 주택이다. 김제 종신리 한·일 절충식 가옥은 목조 2층 건물로 시멘트 기단 위에 주초를 놓고 사각 기둥을 세웠다. 기둥의 두께는 약 130~140㎜로 전통 한옥의 목구조에 비하여 가는 기둥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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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건축물. 김제 농업기반공사 동진지부 죽산지소은 일제강점기 동안 전라북도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일본인 대지주 하시모토의 농장 사무실이다. 하시모토는 1906년 군산을 통해 전라북도에 들어왔다. 1911년 동진강 일대의 개간지를 불하(拂下)받아 개간에 착수하여 이듬해 공사를 완공하였으며, 그 후 죽산 지역으로 거주지를 이전하면서 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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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에서 내촌으로 바로 다니는 버스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루 세 편 있는 버스를 타지 못하면 인근에 있는 신흥마을까지 가야 김제 시내로 오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쉬이 오갈 수 없는 김제 시내를 다니는 것은 동네 사람들 누구에게나 큰일이었지만, 특이 집안일과 시집살이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던 할머니들의 젊은 시절에 김제를 나가는 것은 ‘거사(巨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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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하고 민주적 생활 태도를 함양하여 민주 시민의 자세를 갖춘 애국적인 사람, 개성과 능력에 맞는 소질을 계발하고 자율적 학습 능력을 기르는 면학적인 사람, 인성 교육을 통한 건전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바르게 행하는 성실한 사람, 창의적으로 탐구하고 합리적으로 생활하는 태도를 기르는 창의적인 사람, 건강한 기초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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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연포리에 있는 영농조합. 영농조합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농민들이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동으로 물자의 생산·구매·판매·소비 등의 일부 또는 전부를 협동으로 영위하는 단체이다. 김제시 우리밀영농조합법인은 영농 활동에 필요한 각종 편의 및 효율적인 영농 서비스의 제공을 통하여 조합원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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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었던 역원. 김제 지역은 백제의 벽골군(碧骨郡)인데 신라 때 김제군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屬縣)이었다가, 1143년(인종 21) 현령을 두었다. 1403년(태종 3) 김제현 출신인 명나라 환자(宦者) 한첩목아(韓帖木兒)의 요청으로 군으로 승격되었다. 김제군의 동쪽으로 금구현(金溝縣) 경계까지 14리, 남쪽으로 태인현(泰仁縣) 경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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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에 있는 자연마을. 1040년경 마을이 처음 형성될 당시 비홍락지(飛鴻洛地)라는 명당이 있어 홍산촌(鴻山村)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마을에 살던 박씨 문중의 한 장수가 전쟁터에서 전사한 뒤 그의 말과 안장 그리고 칼만 돌아왔는데, 그 말이 죽은 뒤에 묻었다는 말뫼동산, 기러기가 날아가다 쉬어 간다는 홍지뫼[鴻止山], 화초산(花草山) 줄기로 둘러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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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내촌마을에는 모내기철이면 ‘단’이라 부르는 일모임이 있어 일을 분담하여 모내기를 하였다. 논의 면적이 넓기 때문에 바쁜 모내기철에는 편을 나누어야 제철에 농사일을 마칠 수 있었다. 단은 보통 20여 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되었는데, 내촌마을에는 웃단, 큰뜸단, 너머뜸단, 그렇게 3개의 단이 있었다. 단장은 나이가 좀 들고 활동력이 있는 사람이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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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리 내촌마을을 찾아가려면 먼저 김제시에서 부안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6㎞를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죽산면을 찾아가야 한다. 또 다른 길도 있다. 김제시 남서쪽 외곽의 후신 교차로에서 국도 29호선으로 들어서서 벽골제를 향해 2㎞ 정도 가면 월촌우체국 사거리에 ‘죽산’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이 길을 따라 다시 4㎞ 정도를 가다 보면 홍산리 삼거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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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회관 앞에 가면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 등 여러 개의 현판이 함께 걸려 있다. 많지 않은 수의 마을 사람들이지만 마을 내에서 각각 속해 있는 조직이 다르기 때문이다. 60세 이상이 되면 노인회 회원이 된다. 정회원과 준회원이 나누어져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 남녀를 막론하고 노인회에 참여하게 되는데, 내촌 주민의 평균 연령이 높다 보니 마을 차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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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워낙 크다 보니 내촌마을에는 고개고개 넘어 공동 우물이 여러 개 있었다. 우물은 각각 너머뜸, 재너머, 큰뜸, 웃몰[웃멀], 구석뜸에 있었는데, 유추해 보면 마을 주민들의 마을 내 구분은 우물을 중심으로 한 생활 밀집 단위를 기초한 것으로도 여겨진다. 공동 우물은 마을 아낙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야 집 안 마당에 우물을 만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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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멀댁으로도 불리는 강곡례[1930년생] 할머니는 마을에서 인정하는 베 짜기 선수였다고 한다. 지긋지긋할 만큼 고생스러웠던 길쌈 일이었지만, 강곡례 할머니는 지금도 마을에서 본인이 제일의 실력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내촌에서 나고 자란 강곡례 할머니가 길쌈을 처음 배운 것은 열일곱 살 때라고 한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하고 6학년 졸업반이었던 당시, 마을에 일본군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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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에는 마을회관 건물이 두 개 있다. 1982년에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쌀을 모아서 지은 예전 노인회관과 1998년에 새로 지은 마을회관이 그것이다. 예전 건물은 공간이 좁고 낡아서 새로 만들었지만, 과거의 회관도 쓸모가 없다고 허물지는 않았다. 처음 만들어진 노인회관은 동네 주민 김선균 씨 집안에서 마을을 위해 땅을 희사했고, 주민들이 형편에 맞게 조금씩 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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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상이 만나 봤어? 우리 동네서는 안우상이가 유명혀. 그 집 얘기를 들어 봐야 한다니까 그러네.” 내촌마을 이야기를 듣고자 주민들을 만나던 중 김분순[1933년생] 할머니가 우리에게 ‘안우상이란 인물에 대해 조사해 보라고 권유했다. 안우상? 우리는 처음에 안우상이란 인물이 남성인 줄 알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조사를 다니면서 할머니[여성]들 이야기에 집중해 왔기에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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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는 번드리라 불리기도 한다. 번드리는 드넓은 마을의 논에 물이 꽉 차면 멀리서 볼 때 번들번들하게 보였다 해서 생겨난 이름이며 대창리는 이곳이 큰 곡창 지대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찍이 전킨[한국명 전위렴] 전도사로부터 전도를 받고 입석리교회를 이끌던 이기선(李基先)으로부터 기독교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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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장리의 ‘대’자와 창리의 ‘창’자를 따서 대창리(大倉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서포면(西浦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화동리·대장리·창리 일부, 반산면 화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대창리라 하고 김제군 죽산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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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종신리에 있는 영농 조합 법인. 영농 조합은 열악한 처지에 있는 농민들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상부상조의 정신을 바탕으로 공동으로 물자를 조달하고 생산 판매하는 단체이다. 대창영농법인은 조합원인 농업인들에게 영농 활동에 필요한 각종 편의 및 효율적인 영농 서비스를 제공하여 조합원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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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 동진강휴게소와 부안군 동진면 동전리 장등마을을 잇는 다리. 동진대교가 놓인 동진강 하구에 있던 나루터는 옛날부터 부안과 김제를 잇는 연결 지점이었다. 부안 사람들이 전주나 서울 등으로 나들이할 때 동진나루를 건너 죽산(竹山)~내재역(內才驛)을 거쳐 김제, 금구 또는 이서를 지나 전주에 갔다. 마찬가지로 외지의 사람들이 부안을 찾을 때도 대부분 동진나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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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은 여느 동네처럼 집들이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흩어져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을 곳곳을 부르는 이름들이 있다. 듣기만 해도 정다운 ‘큰뜸’, ‘구석뜸’, ‘너머뜸’, ‘재너머’ 등이 그것들로, 오랜 옛날부터 부르던 이름 그대로이다. 김분순[1933년생] 할머니는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명 때문에 당황스러웠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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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과 인접해 거의 한 마을이나 다름없는 외리에는 저수지가 있었다고 한다. 처음 마을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임씨 일가가 저수지를 쌓으면서 마을을 번성시켰다는 이야기기가 전한다. 외리도 그렇고 내촌도 그렇고 현재 마을의 어느 곳에서도 저수지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앞방죽’과 ‘뒷방죽’이란 지명과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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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새벽마다 장순례[1938년생]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밭으로 나간다. 3년 전 덧없이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홀로 농사일을 하는 게 쉽지 않아 벼농사는 그만둔 지 오래다. 사실 할아버지가 계실 때도 농사일은 할머니 몫이 컸다. 할아버지는 농사일보다 더 좋아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칠순 농민 마라토너로 유명한 고(故) 정현모 할아버지가 바로 할머니의 돌아가신 반려자이다. 워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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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살아온 함양박씨 집안에는 말뫼동이라고도 불리는 말뫼동산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나간 박씨 가문 선조 한 분이 전투에 나가 장렬하게 전사한 후 그의 옷자락을 말이 물고 돌아와서 죽었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이 그 말의 충성심을 기려서 말과 유품을 함께 안장한 곳이라 하여 말 묘, 또는 말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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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마지룡의 정려. 마지룡(馬之龍)의 본관은 장흥, 자는 비섭이다. 27세 정묘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어영장이 되었다. 병자호란 후 효종을 모시고 심양에 있을 때 청나라의 협박으로 300여 군졸을 거느리고 금주 싸움의 선봉으로 출전하여 명나라와 싸우는 청나라를 도왔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 은혜를 생각하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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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 홍산교회 맞은편에는 조그만 소나무 동산이 있다. 이 동산에는 마을 사람들이 말뫼동산이라고 부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민둥 묘 두 기가 있다. 이 말뫼동산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때는 조선 후기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 곳곳이 전쟁터로 변하자,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백성이 나라를 구하고자 의병이 되었다. 내촌마을에서도 용기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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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와 죽산리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의하면 옛적에 두 형제 산이 정답게 지냈는데, 어느 날 물난리가 나자 두 산이 조난을 당해 형 산은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으나 동생 산은 죽산까지 떠 내려왔다고 한다. 그 산이 명량산으로 형을 잃고 슬피 울었다 하여 명량산(鳴良山)이라 전한다. 명량산은 죽산면 평야지대에 유일하게 있는 산으로 마치 누에가 길게 누워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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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반도 어느 농촌에서건 농사를 짓는 이들의 가장 큰 숙제는 원활한 농수 공급이었다. 가뭄이 드는 해에는 밭작물의 피해도 컸지만 논농사는 물 없이는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늘을 원망스럽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홍수가 들면 개천과 하천에 연하고 있는 논들은 큰물에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소위 천수답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는 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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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학생운동가.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에서 태어난 박종운(朴鍾雲)은 서울의 보성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1년 6월 17일 동맹 휴학(同盟休學)을 주도하였다. 당시의 동맹 휴학은 학생들이 교육상 제 문제나 또는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한국에서 동맹 휴학이 격화된 시기는 1920년대부터인데, 이는 1919년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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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신흥리에 있는 자연마을. 만경강(萬頃江)의 바닷물이 마을 앞뒤로 드나든다 하여 보안(洑岸),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뜻에서 복간(卜間)이라 했다고 한다. 한때 일본인들이 ‘신복’이라고 부르다가, 광복 후 다시 복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옛날 조수를 막기 위해 쌓았던 제방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보간(洑間)이라고 부르다가, 발음이 변하여 복간이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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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오래전부터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 불당마을에는 석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갈 때 항상 이 석불상에 공양을 드리고 나가는 것이 하나의 풍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해일이 일어 이 불상이 어디론가 묻혀버렸다. 그 후 어느 해 방목리에 사는 정진섭(鄭進燮)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한 채 마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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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서해 바닷가 마을’이라 하여 서포리(西浦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서포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불당리·원기리·창리 일부, 홍산면 소제리·영구리·하원리·죽산리 일부, 부안군 이도면 방목리 일부를 병합하여 서포리라 하고 김제군 죽산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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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에서는 동물을 거의 키우지 않는다. 그 때문에 마을에 들어서도 개짖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마을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 서로 가금류를 사육하지 않기로 묵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 이사를 온 한 주민이 진돗개를 3마리 정도 사육하고 있다. 처음에는 여러 마리를 키웠는데 주민들이 마을 사정을 설명하여 수를 줄였다고 한다. 농기계가 없었던 시절 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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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없이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내촌을 찾아가는데 동네 어귀에 위치한 집 은행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1인용 평상에 누워 은행나무가 드리우는 그림자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청하자 처음에는 휴식을 방해한 낮선 방문객이 달갑지 않은 듯하였지만, 잠시 후에 그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정판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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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종신리에 있는 자연마을. 수교(水橋)는 약 130년 전까지만 해도 신평천(新坪川)이 서해로 유입되는 하구의 나루터였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면서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대고자 소나무로 일종의 보(洑)를 만들어 물을 가두었는데, 이 보가 장마 때에는 무너미[봇물을 대기 위해 도랑을 걸쳐 막은 부분]가 되고, 평소에는 다리가 되었으므로 수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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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월리의 ‘신’자와 유흥리의 ‘흥’자를 따서 신흥리(新興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홍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흥리·마삼리 일부, 반산면 신월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흥리라 하고 김제군 죽산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죽산면 신흥리가 되었다. 원평천(院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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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가 길을 따라 길게 양편으로 늘어서서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길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땅이 맞닿은 광활한 김제만경 평야는 우리나라의 최대 곡창지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풍성한 현재의 풍경은 그냥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선조들의 피땀으로 얼룩진 부산물이다. 억압과 착취에 항거한 농민운동인 동학농민운동명은 이 지역 일대를 근거지로 시작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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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연봉리의 ‘연’자와 마포리의 ‘포’자를 따서 연포리(蓮浦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홍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봉리·유호리·마포리·하신리·상포리·마삼리 일부, 반산면 신월리 일부, 부량면 옥동리·신제리 일부, 고부군 백산면 대선리·소삼리·대삼리를 병합하여 연포리라 하고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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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연포리에서 발원하여 동진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연포천이 발원하는 김제시 죽산면 연포리는 원래 홍산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연봉리·유호리·마포리·상신리·하신리·상포리·마삼리의 일부와 반산면의 신월리 일부, 부량면의 옥동리와 신체리 일부, 고부군 백산면의 대선리·소삼리·대삼리를 합하여 연봉과 마포의 이름을 따 연포리로 고쳐서 죽산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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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대옥산리의 ‘옥’자와 신성리의 ‘성’자를 따서 옥성리(玉盛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반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성리·대옥산리·소옥산리·내재리·제내리·신흥리 일부, 대촌면 신학리·산리·경제리 일부, 월산면 후장화리 일부, 홍산면 신동리·명마리를 병합하여 옥성리라 하고 김제군 죽산면에 편입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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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내촌은 120여 호에 이르는 커다란 마을이었다. 해주오씨와 함양박씨의 집성촌이었다고도 전해 오지만, 현재 박씨와 오씨 성을 가진 가구는 10가구 정도에 불과하다. 지금 마을에서 제일 많이 살고 있는 성씨는 동래정씨다. 동래정씨가 마을에 들어온 것은 300~400년 전이다. 당시 마을에는 함양박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마을 내 대부분의 토지도 소유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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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에 있는 자연마을. 홍산리에 속한 내촌[당시에는 내리]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외리(外里)라 하였다. 약 300년 전 장씨와 임씨 등이 처음으로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임씨들이 주축이 되어 저수지를 쌓으면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저수지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외리는 홍산[24m]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낮은 구릉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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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농사가 일반적인 내촌에 유일하게 있는 과수원! 1967년, 우연히 심었던 몇 그루의 배나무가 시작이었다. 2003년경 정부로부터 친환경 저농약 농장으로 인증을 받은 이 과수원은 마을 토박이 박성균 할아버지의 젊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성균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과수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전북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한 재원으로 수년간 공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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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72년경이다. 인근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내촌 주민들은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고는 한국전력공사에 알아보니, 용성리 포교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공사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주민 부담금이 만만치 않다고 한 것이다. 전기 공사를 위해 전봇대 25개를 설치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당시로서는 많은 비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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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애[호적명 양복자, 1938년생] 할머니는 마을에서 정거장댁으로 불린다. 중멀댁, 진흥댁, 광활댁 등 마을 할머니들 대부분이 지명을 딴 택호(宅號)로 불리고 있는데 정거장댁이라니? 양순애 할머니 집을 물으면 못 찾다가도 “정거장댁 할머니요.” 하면 다 알아듣는 주민들을 보면서 왜 그런 택호가 붙여졌는지 궁금해졌다. 택호는 여자들이 결혼 후 갖게 되는 또 다른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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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종남리의 ‘종’자와 신평리의 ‘신’자를 따서 종신리(宗新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반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종남리·신평리·화교리·죽동리·자고리·대장리 일부를 병합하여 종신리라 하고 김제군 죽산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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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종신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인석. 문인석(文人石)은 봉분 곁을 지키는 문관 모습의 석상을 말하며,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올려 홀을 들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3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사람의 무덤 앞에만 설치할 수 있다. 종신리 죽동마을 문인석의 축조 시기는 문인석의 구조와 형태로 미루어 볼 때 조선시대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경위는 밝혀진 것이 없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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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청소년 문화 시설. 2009년 현재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는 김제·만경·금산·죽산 등 4곳의 청소년문화의 집이 운영되고 있다. 김제청소년문화의 집은 김제시 검산동에 있고, 만경청소년문화의 집은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위치하며, 금산청소년문화의 집은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에 자리하고 있다. 죽산 청소년문화의집은 김제시가 청소년들에게 지역 사회 생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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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소공원. 죽산공원(竹山公園)에는 인근 주민들의 이용 편의를 위하여 각종 체육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 2009년 4월에는 한식형 팔각기와 정자를 건립하였다. 죽산공원은 서해안고속국도, 김제와 부안을 연결하는 국도 23호선, 부량면에서 만경읍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711호선의 중간 지점으로, 경위도상의 위치는 북위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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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와 연포리를 잇는 다리. 국도 23호선과 연결되는 죽산교는 길이 180.3m, 폭 20.3m, 높이 6.0m이며, 경간 수 4, 상부 STB형 구조, 하부 RAA형 구조, 설계 하중 DB-24이다. 2009년 현재 교통량은 10,191회이다. 죽산교는 지방도가 지나가는 옛 죽산교와 죽산면 소재지를 우회하여 2004년 개설된 국도 23호선과 연결되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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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있는 농경지.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에서 발원한 원평천(院坪川)이 봉남면과 부량면을 거쳐 죽산들을 지나 동진강(東津江)으로 유입되고 있다. 죽산들은 동진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다. 주요 들녘으로는 대창리에 고래들·구래속들, 신흥리에 높은들, 종신리에 대앙들·정상평, 홍산리에 시급평 등이 있다. 서해안고속국도와 국도 23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죽산들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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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00여 년 전 동학군이 무기인 죽창(竹槍)를 만들었다는 대숲이 우거져 대뫼라 하였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죽산으로 바뀌었다. 조선 말기 김제군 반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칠리·석산리·명량리·죽동리·자고리·제내리·화교리·대장리 일부를 병합하여 죽산리라 하고 김제군 죽산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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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면소재지인 죽산리(竹山里)는 산에 대나무가 많아 ‘대뫼’ 또는 ‘죽산’이라 불렸으며, 여기서 죽산면(竹山面)의 지명이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죽산리가 지리적 위치상 중심지에 해당하여 자연스럽게 면소재지의 지명이 되었다. 조선 말기 김제군 반산면(半山面) 지역으로 신성(新成)·대옥산(大玉山)·소옥산(小玉山)·내재(內才)·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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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은 현재 약 40여 호가 살고 있지만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던 1970~1980년경에는 120여 호가 살았던 비교적 큰 마을이었다. 마을을 죽 돌아보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품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가까이 가 보면 비어 있는 집들이 많다. 마을 인구는 10~15년 전부터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가장 큰 원인은 농촌에서는 자식들을 교육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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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있는 죽산면 관할 행정 기관. 전라북도 김제시를 구성하는 1개 읍[만경읍], 14개 면[죽산면, 백산면, 용지면, 백구면, 부량면, 공덕면, 청하면, 성덕면, 진봉면, 금구면, 봉남면, 황산면, 금산면, 광활면], 4개 행정동[요촌동, 신풍동, 검산동, 교월동] 중 죽산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죽산면사무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의 행정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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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바르고 튼튼한 어린이, 새롭게 생각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어린이, 이웃을 사랑하고 더불어 발전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4년 4월 17일 죽산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1945년 9월 24일 죽산국민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1981년 3월 9일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1일 죽산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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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옥정리에서 익산시 용안면까지 연결되는 지방도. 지방도711호선은 총 연장 53.212㎞로 2차선 34.643㎞, 4차선 18.569㎞이다. 김제시의 경우, 서부의 김제평야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부량면 옥정리에서 시작하여 죽산면·성덕면·만경읍·청하면을 거쳐 군산시 대야면으로 진입한다. 김제시를 통과하는 지방도711호선 구간은 부량면 옥정리에서 상포까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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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낮, 너머뜸 어귀 강순례 할머니 댁 그늘진 담장 밑은 오가는 이들의 휴식처이자 울 밖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겨울에도 강순례 할머니의 울안에 있는 작은 사랑채에는 군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어 추운 날 불을 지펴 놓고 몇 분이 모여 도란도란 정담을 나눈다고 한다. 처음 우리가 강순례 할머니 집을 방문할 당시, 할머니 두 분이 얇은 비닐을 깔고 담장 밑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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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판규[1921년생] 할아버지는 “이제 늙어 눈이 아른거려 잘 보이지 않고 기력도 없어 말을 계속하면 힘이 든다.”면서도 살아온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일제강점기 그는 농사일을 해도 일본 사람들이 다 뺏어 가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이 시기에 일본 사람들은 안하무인으로, 마을 주민들을 마치 종 부리듯이 했다고 한다. 행여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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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는 일러전쟁 당시 통역관이었다.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20대의 젊은 하시모토는 조선 땅에 남아 대농장주를 꿈꾸면서 마구잡이로 토지를 사들였다. 그리하여 그는 죽산면에 있는 토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농장과 소작인들을 군대식으로 조직하며 소작쟁의를 막는 등 철저하고 치밀하게 농장을 운영한다. 간교하게 농민들을 착취했던 하시모토는 너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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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농사철의 농촌에서는 마을에 들어서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 마을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없어 이집 저집을 방문하다 보니 마침 한 할머니가 손수레에 뭔가를 싣고 있었다. 밭에 가야 한다며 서두르는 모습에 이야기를 청하기가 어려웠다. “암만히도 오늘 아니먼 낼 비가 올 것 같아서, 비오기 전에 깨를 털어야 흥게.” 그래서 손수레를 끌고 바삐 움직이는 할머니의 뒤를 따라 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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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에 있는 자연마을. 해창(海倉)이란 지명은 해상 교통이 편리한 이곳에 나라에서 세운 창고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창은 원평천(院坪川)이 서해와 만나는 하구에 발달한 포구 마을이었다.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명량산(鳴良山)[300m]에서 뻗어 나온 구릉이 서해와 만나 멈춘 지점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예로부터 해산물과 육산물의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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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金提)라는 지명을 풀이하면 ‘황금을 캐내는 둑’이라고 한다. 여기서 황금은 노랗게 황금색으로 일렁이는 추수기의 벼이삭을 의미한다. 만경(萬頃)이란 말 또한 1만 이랑의 드넓은 평원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부터 부르는 ‘징게 맹갱 외얏밋[외배미] 들’은 ‘황금이 노랗게 일렁이며 끝없이 하나로 이어진 너른들’이라 풀이할 수 있다. 기름진 옥토와 따듯하고 비가 많은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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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에는 유독 큰 집에서 덩그러니 홀로 사는 할머니들이 많다. 강순례[1927년생] 할머니도 마찬가지이다. 부안 백산이 친정인 할머니는 열일곱 살 때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할아버지와 혼례를 올리고, 하루도 되지 않아 바로 시댁으로 왔고, 현재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다. 처음 내촌으로 시집 왔을 때, 집은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전부였다. 열아홉 살에 첫딸을 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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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수지리상 기러기가 앉아 있는 형국이어서 홍지뫼 또는 홍산(鴻山)이라 하였다가 후에 기러기 ‘홍(鴻)’자를 큰물 ‘홍(洪)’자로 바꾸어 홍산(洪山)이 되었다. 조선 말기 김제군 홍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리·오봉리·쌍궁리·내리·죽산리 일부, 월산면 수월리 일부를 병합하여 홍산리라 하고 김제군 죽산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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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回甲)은 우리나라 전통의 생애 의례 가운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61세는 환갑 또는 회갑으로 자기가 태어난 해로 돌아와 새로 태어남을 의미할 정도로 주위로부터 축하를 받는 특별한 기념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다 보니 회갑연을 준비할 분들이 거의 없어 마을에서 열리는 회갑 잔치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