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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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花郞 |
영어음역 | Na Hwarang |
이칭/별칭 | 조광환(曺曠煥),탁소연(卓素然)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민경탁 |
출생 | 1921년 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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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 1935년 |
수학 | 1940년 3월 |
활동 | 1940년 8월 |
활동 | 1943년 8월 |
활동 | 1945년 10월 |
활동 | 1945년 10월 |
활동 | 1947년 9월 |
활동 | 1952년 1월 |
활동 | 1954년 12월 |
활동 | 1954년 2월 |
활동 | 1956년 3월 |
활동 | 1958년 |
활동 | 1960년 |
활동 | 1962년 10월 26일 |
활동 | 1963년 1월 |
활동 | 1972년 1월 22일 |
활동 | 1975년 |
활동 | 1981년 |
몰년 | 1983년 11월 17일 |
특기 사항 | 2008년 10월 29일 |
활동 | 2009년 12월 30일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722번지 |
노래비 |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35번지 직지문화공원 |
성격 | 작곡가|편곡자|가요 비평가|음반 제작자 |
성별 | 남 |
본관 | 창녕(昌寧) |
대표 경력 | 라미라레코드사 사장 |
[정의]
근현대 김천 출신의 가수, 작·편곡가, 연주자, 음반 제작자.
[개설]
나화랑(羅花郞)의 본명은 조광환(曺曠煥)이다. 1921년 김천 봉산면 인의리에서 아버지 조용묵(曺容默), 어머니 이진우(李珍愚)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작사가 고려성(高麗星)[본명 조경환(曺景煥)]의 셋째 아우이다. 나화랑은 애초 가수 활동을 하다가 이내 작곡가로 선회하였다. 1943년 8월 가요 「삼각산 손님」[조광환 곡, 구성진 노래, 대동아레코드 19604-A), 「청춘풀이」(조광환 작곡, 구성진 노래, 대동아레코드 19604-B)가 작곡 데뷔곡이다. 1948년 6월 서울레코드사가 창설되자 서울로 올라왔다. 1954년 12월 킹스타레코드사에 전속 작곡가 겸 문예부장으로 입사해 본격적인 작·편곡활동을 했다. 나화랑은 1956년 KBS(서울중앙방송국) 경음악단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1962년에는 라미라레코드사를 창설하여 경영하기도 했다. 이후 지구레코드사, 그랜드레코드사, 대도레코드사 등에서 전속 작곡가로 활약했다. 국방부 공모 노랫말 「멸공의 횃불」(상병 서정포 작사, 1975)에 곡을 붙여 국민가요로 만들었다. 1983년 11월 17일 서울 경희의료원에서 타계한 나화랑은 한국 대중가요 1세대의 대표적인 작곡가다.
[활동 사항]
나화랑은 1942년 제2회레코드예술상[전국 13도 신인가수 대항 콩쿠르]에 응모하여 입상, 태평레코드사 문예부장 박영호로부터 ‘나화랑’이란 예명을 받으며 대중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나화랑은 김천에서 음악 교사로 근무하면서 「봉계초등학교 교가」, 「김천서부초등학교 교가」를 작곡하여 헌정했고, 1952년 육군본부 군예대 악단장, 1954년에는 공군 정훈음악대에서 군가 작곡 및 지휘자로 활동했다. 제대 후 킹스타레코드사에서 우리 민요를 체계적으로 편곡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민요 LP판을 내면서 200 종이 넘는 민요와 신민요, 대중가요계 민요 음반을 제작해 냈다. 한국 가요에 맘보를 위시한 서양의 스윙, 탱고, 블루스 등의 리듬을 접목시켰다. 나화랑은 1956년 대한레코드작가협회창립 맴버로서 건전가요 저작, 보급에 선도적 역할을 했으며, 1960년대 초 라미라레코드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이 무렵 손석우·황문평·전오승·김인배·송민영 등과 한국방송작가그룹을 결성하여 밝고 건전한 가요 보급에 힘썼다. 그가 작곡한 군가 「멸공의 횃불」은 지금도 육군 훈련소, 카츄사 부대, 어느 포병여단에서는 로고송으로 부르고 있다. 송민도·박재란·손인호·도미·남일해·이미자·김상희 가수들의 데뷔 및 명성을 얻음에는 작곡가 나화랑의 영향이 컸다.
[저술 및 작품]
작곡가 나화랑은여느 대중가요 작곡가와 달리 우리 민요에 심취해 잡가, 작․편곡 민요, 대중가요계 민요, 스케치 등의 SP 및 LP 음반을 수많이 남겼다. 한국 가요사에서 그를 김교성·이재호·박시춘·손석우 등과 더불어 한국 전통가요 증흥과 보급에 이바지한 대중가요 1세대 작곡의 귀재(鬼才), 편곡을 잘 하여 선율의 마술사로도 불린다.
[상훈과 추모]
2008년 김천에서 나화랑기념사업회(초대회장 정근재)가 결성되었다. 기념사업회에서는 고려성·나화랑 형제 노래비 건립(김천 직지문화공원, 2009년/2013), 나화랑 대표곡선집 CD 제작(2011), 전국나화랑가요제 개최(제1회 대회, 김천실내종합체육관, 2014), 2015년부터 나화랑음악제 연례 개최 등으로 기념사업(현 회장 민경탁)을 지속해 오고 있다. 2020년 3월 나화랑 생가가 문화재청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