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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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綾城 具氏 |
영어음역 | Neungseong Gussi |
영어의미역 | Neungseong Gu Clan |
이칭/별칭 | 능주 구씨(綾州具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남산리 |
집필자 | 송영호 |
입향 | 163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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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남산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남산리 |
성씨 시조 | 구존유 |
입향 시조 | 구인리 |
[정의]
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하고 구인리(具仁里)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능성구씨는 고려 말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을 지낸 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한다. 7세(世)에 이르러 11개 파로 분파되었는데, 김천 지역의 후손은 조선 태조 때 도원수(都元帥)를 지낸 구성로(具成老)를 중시조로 하는 도원수파에 속한다. 10세 구수영(具壽永)은 연산군 때 정국공신으로 능천군(綾川君)에 봉군되었고 14세 구굉(具宏)은 선조 때 병조판서를 지내고 능성부원군(綾城府院君)에 봉군되었다.
[입향 경위]
김천 지역의 능성구씨는 15세 전주판사 구인리가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양주에서 김천시 어모면 남산리로 입향했다.
[현황]
후손 구동희에 의하면 김천시 어모면 남산리 지산마을에 능성구씨가 대대로 집성을 이루어 살아왔고, 최근까지도 15가구를 유지했는데 산업 단지 조성 공사로 인하여 대부분 타처로 떠났다. 2010년 2월 말 현재 남산리 지산마을에 5가구, 응명동에 2가구, 신음동에 3가구가 살고 있다. 김천에 입향한 이후 19세 구효원(具孝元)이 공조좌랑, 21세 구재량(具在良)은 의금부도사, 21세 구재덕(具在德)은 정조 때 부승지를 지냈다.
[관련 유적]
김천 지역의 능성구씨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어모면 남산리 지산마을에 현판이 없는 문중 재실(齋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