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신안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696
한자 申安善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혜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31년 10월 28일 - 신안선 효행으로 복호
성격 효자
성별

[정의]

조선 전기 현재의 도봉구 지역이 포함된 양주 지역에 살았던 효자.

[가계]

신안선(申安善)의 가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신안선이 양주부(楊州府)에 살고 있었으며, 훈도(訓導)를 지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활동 사항]

신안선은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극진한 효성으로 보살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무덤에 합장하였으며, 이후로 3년 동안 동리(洞里) 밖을 나가지 않고 아침저녁, 초하룻날과 보름날에 음식을 차려 제사를 지냈다. 이처럼 한결같이 돌아가신 부모를 받들면서 특히 불교에서 행하는 방식을 멀리 하여 향당(鄕黨)의 공경과 신임을 받았다. 이러한 행적이 조정에 알려져 예조에서 직접 포상을 주청하였다. 당시의 양주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지역이나 신안선의 구체적인 거주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신안선이 복호(復戶)를 받던 당시 양주의 부치(府治)는 견주(見州)로서 현재의 경기도 양주시 일대에 해당한다.

[상훈과 추모]

1431년(세종 13) 10월 28일, 예조에서 신안선을 포함하여 경기도 금천(衿川)의 호장(戶長) 장미(莊美), 교하현(交河縣)의 황염(黃檿) 등 효자와 절부 29명에 대하여 포상을 받지 못한 자는 복호해 주고, 벼슬할 만한 재주를 가진 자는 서용(敍用)할 것을 주청하여 윤허를 받았다. 신안선은 이때 전 훈도(前訓導)로서 지칭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서용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다만 복호를 통해 요역과 전세(田稅)를 제외한 잡부금을 면제받았을 것이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