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4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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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依斗巖 |
영어공식명칭 | Uiduam Roc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학로 |
현 소재지 | 의두암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 영탑사 뒷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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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바위 |
양식 | 삼층 구조의 자연 암벽 |
관련 인물 | 김윤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높이 약 4m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영탑사 뒷산에 위치한 높이 4m의 자연 암벽.
[개설]
의두암(依斗巖)은 당진시 면천면의 영탑사(靈塔寺) 뒷산 연화봉에 있는 자연 암벽이다. 생김새는 산 정상 못 미쳐 큰 바위가 우뚝 서 있는 형상이다. 의두암은 높이가 4m 정도에 3층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수직 벽면에 예서체로 ‘의두암’이라 새겨져 있다. 글씨를 새긴 사람은 구한말의 고위 관료이자 학자였던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1835~1922]이다.
[건립 경위]
김윤식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영탑사 아래 절골에서 6년간 유배살이를 하였는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의두암에 올라 시문도 짓고 주연도 즐겼으며, 활도 쏘았다. 한편으로 의두암에 앉아 북쪽의 임금을 생각하며 죄를 짓고 남쪽으로 유배온 자신을 한탄하였다고 일기인 『속음청사(續陰晴史)』에 기록하고 있다. 김윤식은 『속음청사』를 통해 "의두암은 연화봉 왼쪽에 있는데, 3층 석벽으로 되어 있으며, 위에 올라 앉으면 멀리까지 볼 수 있는데, 날이 좋고 구름이 없는 맑은 날에는 아미산, 다불산 사이로 서울의 산과 강화 마니산이 모두 보이기 때문에 ‘의두암’이라 했다."라고 하였다., 김윤식은 의두암을 각별히 생각하여 음력 1888년 7월 4일 두 명의 석공을 불러 벽면에 ‘의두암’이라는 세 글자를 새기게 하였다.
[위치]
의두암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 영탑사 유리광전 뒷산 7부 능선쯤에 있다.
[형태]
의두암은 높이가 4m 정도에 3층의 구조를 가진 자연 암벽이다. 각 층별로 몇 사람이 앉을 만하게 평평한 대를 이루고 산 정상을 향해 마치 병풍을 두른 것처럼 수직으로 서 있다. 모양이 큰 의자를 보는 듯하다. 김윤식의 『속음청사』에서는 "의두암은 층마다 몇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만큼 평평한데 각각 이름이 있다. 1층은 진의강, 2층은 적취대, 3층은 의두암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의두암 좌우에 거석이 호위하듯 서 있는데 좌측에 있는 바위는 구선암, 우측에 있는 바위는 두타암이라 했다."라고 하였다.
바위의 수직 벽면에 예서체로 ‘의두암’이라고 쓴 음각면의 크기는 가로 약 90㎝, 세로 29㎝이며, 전체 크기는 가로 약 420㎝ , 세로 150㎝이다. 또한 '인도정일○○(人道正一○○)'이라 쓰인 음각면의 크기는 가로 약 20㎝, 세로 65㎝이며, 전체 크기는 가로 약 350㎝, 세로 260㎝이다.
[금석문]
〈의두암 명문(銘文)〉
전면: 의두암(依斗巖)
전면 좌측: 인도정일(○○/人道正一○○)[사람의 도리는 정직해야 한다]
[현황]
면천면 소재지에서 서쪽 도로를 따라 약 2km를 가면 영탑사에 닿게 되며 북쪽에 있는 영탑사 7층 석탑을 지나 300m쯤 올라가면 ‘의두암’이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음각된 바위가 있다.
[의의와 평가]
의두암은 자연 암벽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구한말 고뇌하는 지식인들의 깊은 사연이 깃든 곳이다.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매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