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1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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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洞 側柏- 香山九老會 |
영어공식명칭 | Dodong Thuja Forest and Hyangsanguroho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황동권 |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있는 도동 측백나무 숲의 자연·인문지리 및 역사적 가치와 그것을 노래한 문인들과 단체.
[천연기념물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다리 남쪽 제방을 따라 동으로 약 2㎞ 정도 가면 길 오른편에 불로천을 끼고 있는 향산(香山)이 나타난다. 향산 북쪽 비탈 낭떠러지를 덮고 있는 울창한 숲이 천연기념물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비슬산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암괴류와 더불어 대구광역시에는 두 곳 밖에 없는 소중한 천연기념물이다.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은 1933년 처음 지정될 당시 100년 정도 수령이 된 수천 그루의 측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굴참나무, 느티나무, 굴피나무, 물푸레나무 등도 측백나무와 함께 섞여 자라고 있지만, 현재도 약 1,200여 그루 측백나무가 순림(純林)[같은 종류의 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에 가까운 숲을 형성하고 있다. 나무가 살기 어려운 바위에 측백나무 수천 그루가 있었기 때문에 향산을 방문한 문인들은 시나 시조로 자신의 감흥을 이야기했을 뿐 아니라,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을 지키기 위한 단체가 각 시기별로 있었다.
[시인 문객의 발자취]
측백수림의 수려한 경관은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일찍이 조선 전기 대문호인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1420~1488]도 「북벽향림(北壁香林)」을 지었다. 「북벽향림」은 서거정이 대구지역 대표적 경관을 노래한 「대구십영(大丘十詠)」 중 제6영으로, 바로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의 기백과 맑은 향기를 노래하고 있다.
북벽향림(北壁香林)[북쪽 절벽의 향기로운 숲]
고벽창삼옥삭장(古壁蒼杉玉槊長)[옛 절벽의 푸른 측백나무 대나무처럼 긴데]/장풍불단사시향(長風不斷四時香)[거센 바람 끊임없이 불어 사계절 향기롭네]/
은근갱착재배력(慇懃更着栽培力)[정성스럽게 다시 힘을 쏟아 심고 가꾼다면]/류득청분공일향(留得淸芬共一鄕)[남아 있는 맑은 향기 온 고장에 퍼지리라]
「북벽향림」에서 서거정은 향산 벼랑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측백나무가 대나무처럼 높이 솟아올라있고, 끊임없이 불어오는 거센 바람으로 사계절 내내 그 맑은 향기를 날려 보내는 것을 감탄하였다. 그리고 이 측백나무 숲을 잘 가꾸어 그 맑은 향기가 그 일대에 가득차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내었다.
조선 중기의 뛰어난 문장가인 천파(天坡) 오숙(吳䎘)[1592~1634]은 사가 서거정의 「대구십영」의 운자를 사용하여 「달성십영(達城十詠)」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 중 제6영 역시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을 노래한 「북벽향림(北壁香林)」이다.
북벽향림(北壁香林)[북쪽 절벽의 향기로운 숲]
연우공몽초수장(煙雨空濛草樹長)[안개비 내려 흐릿하고 초목은 기다란데]/일춘홍자백화향(一春紅紫百花香)[봄날의 울긋불긋 온갖 꽃들 향기롭구나]/
탐유선승료종석(探幽選勝聊終夕)[밤새 그윽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찾다가]/미각평종체이향(未覺萍蹤滯異鄕)[나도 몰래 떠돌던 발자취 타향에 머무네]
「북벽향림」에서 오숙은 그윽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 떠돌다가 안개비 내리는 흐릿한 어느 봄날에 측백나무 숲의 온갖 초목들이 풍기는 향기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는 황홀한 광경을 노래하였다.
한편, 이강룡 시인이 쓴 시조 「도동 측백수림」은 도동 측백나무 숲의 높은 기개와 은은한 향기를 억센 대구 사투리로 노래하였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인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천 살을 묵었다 카네 저 빼빼한 나무들이/
험한 바우 틈서리 비집고 들어 앉아/안즉도 청청한 웃음 웃고 있다 아이가/
서거정 큰 선생도 저들을 봤다 카제/북벽향림(北壁香林)이라 참한 이름도 지어주고/
달구벌 십경 중에서 으뜸이라 카시다/나무도 천 년쯤은 비바람을 맞고 나면/
안으로 뼈를 녹여 은은한 향을 짓는갑다/두둥실 달뜨는 밤이면 한 채 피리로 사는갑다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과 향산구로회]
19세기 말 향산 인근에 살았던 아홉 늙은이들이 ‘향산구로회’라는 시회(詩會)를 조직해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측백나무 숲을 노래하였다. 겸산 서영곤의 「향산기(香山記)」에 따르면, 1873년(고종 10) 봄에 목간(木澗) 최운경(崔雲慶), 만호(晩湖) 채정식(蔡正植), 행와(杏窩) 곽종태(郭鍾泰) 등이 서로 “우리들은 모두 이 향산을 둘러싸고 거주하면서 나이가 이미 늙었습니다. 서로 만나는 것이 소원하여 단합하는 것이 쉽지 않아 아쉽습니다. 마침 중국 당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만든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와 산 이름과 인원수가 똑같으니 이를 본 떠 산중의 모임을 만드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백거이는 조정에 불만이 있거나 세상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8명, 즉 호고(胡杲)·길교(吉皎)·유진(劉眞)·정거(鄭璩)·노정(盧貞)·장혼(張渾)·이원상(李元爽)·여만(如滿)과 함께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를 결성하여 중국 뤄양(洛陽)의 향산(香山)에 모여서 시를 읊고 술을 마시며 노년을 보냈다. 이처럼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을 중심으로 인근에 사는 9명의 노인들이 중국 당나라 때 백거이가 만든 ‘향산구로회’와 산 이름이 같고 멤버 수가 같으므로, 이를 본 떠 만든 모임이 바로 ‘향산구로회’였음을 알 수 있다.
향산구로회에 참여한 인원을 살펴보면, 향산 동쪽의 목간 최운경, 향산 서쪽의 행와 곽종태·금상(琴上) 곽치일(郭致一)·낙고(洛皐) 도윤곤(都允坤), 향산 북쪽의 만호 채정식·석문(石門) 채준도(蔡準道)·국오(菊塢) 최완술(崔完述), 향산 남쪽의 향려(香廬) 서우곤(徐宇坤)·겸산 서영곤 등 9명이다. 이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학문에 매진하여 규모과 지조가 옛사람에 뒤지지 않지만,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산림에서 늙어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매해 늦봄에 향산에 있는 산방(山房)에 모여 며칠 밤낮으로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시문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멤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모임이 해체되었다. 훗날 겸산 서영곤은 향산구로회를 잊지 못하여 향산 절벽에 멤버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향산구로회 멤버 중에 한 사람인 겸산(兼山) 서영곤(徐永坤)이 측백나무 숲의 아름다운 자태와 깎아지른 벼랑을 노래한 「향암창벽(香巖蒼壁)」이다.
「향암창벽(香巖蒼壁)」[향암의 푸른 벼랑]
협랭애한하가구(峽冷崖寒夏可裘)[골짝 차고 벼랑 추워 여름에도 갖옷입고]/창창시대파한수(蒼蒼時對罷閒愁)[울창할 때 마주하면 헛된 근심 사라지네]/
기부천인고강봉(氣浮千仞高岡鳳)[천 길이나 뜬 기운 높은 언덕의 봉황이요]/영재사양출곡우(影載斜陽出谷牛)[석양빛 물든 그림자 골짝 나서는 소로다]/
수벽초개회화수(繡闢綃開回畫手)[펼쳐진 채색 비단 화가를 사양할 정도고]/귀완신각교시㗋(鬼剜神刻攪詩㗋)[귀신이 깍은 솜씨 시인의 시상 일으키네]/
은병선장지하허(隱屛仙掌知何許)[대은병과 선인장 어디에 있는지 아느뇨]/오매민산구곡주(寤寐閩山九曲舟)[민산구곡에 배 띄우기를 오매불망하노라]
향산구로회의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에 대한 사랑과 9명의 돈독한 우정은 그의 후손들에 의해 되살아났다. 향산구로회에 참여한 후손들이 1933년 3월에 향산구로회를 기념하기 위해 향산에 구로정(九老亭)을 건립하였다. 구로정은 향산 북쪽 절벽 중턱 숲속에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고운 자태를 감춘 채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을 노래한 사람들의 감흥을 기억하고 있다.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의 가치]
측백나무는 중국 서부의 신장 위구르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와 칭하이성[靑海省] 및 남부지역을 제외한 중국 전역에 걸쳐 자라는 늘푸른 바늘잎나무로, 중국의 사원이나 귀족의 묘지에는 반드시 심는 나무였다. 관청은 백부(栢府)라 하여 권위의 상징으로 측백나무를 심었고, 산둥성[山東省]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 묘소에는 향나무와 함께 측백나무를 나란히 심었다. 중국에서는 지방에 따라 정월 초하룻날 측백나무 가지를 꺾어 집 안 장식을 하고 가족의 장수와 행복, 번영을 빌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측백나무의 원산지가 중국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도동 측백나무 숲의 측백나무가 우리나라 자생수종임이 알려지면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측백나무의 남방한계지라는 점에서 자연지리학적으로도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절벽바위에 붙어 서식하는 측백나무 숲 중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우는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의 측백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의 측백수림[천연기념물],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영천리의 측백수림[천연기념물] 등이 있다.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은 조선 전기 사가 서거정부터 최근 시인까지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그 아름다움과 기백을 시문으로 노래하였다. 서거정이 이 측백나무 숲을 잘 가꾸면 맑은 향기가 온 고을에 퍼진다고 노래했듯, 우리들 역시 이 도동 측백나무 숲을 잘 가꾸고 보존하여 측백나무 숲이 지닌 인문·역사적 가치와 자연·지리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우리들의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