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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낙동강 전투의 격전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B020105
한자 六二五戰爭 中 洛東江 戰鬪- 激戰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호상

[정의]

6.25전쟁 중 낙동강 전투의 격전지

[한국전쟁 전반기 최후의 보루 낙동강방어선]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의 전개과정에서 미군과 유엔군이 참전하여 반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 쪽으로 밀려나 긴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산을 기지로 총반격을 하고자 최후의 보루로 설정한 것이 이른바 낙동강 방어선이었다. 낙동강을 지키기 위해 한국군과 유엔군은 각 구역을 나누어 북한군의 총공세에 맞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달성군 논공읍 삼리1리 씩실마을 일대도 격전지 가운데 하나였다.

[낙동강변의 달성군, 전쟁의 소용돌이로]

8월 초로 접어들면서 유엔군과 국군은 낙동강을 최후의 보루로 설정하고 북한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 제 10사단은 대구 서쪽 방어선에 대한 공격임무를 부여받고 8월 11일 고령에 집결하였다. 북한군은 사단 병력 가운데 제25,제29연대를 용포 및 현풍 방면에 배치하였다. 그 가운데 29연대 1개 대대가 가장 먼저 미 제 1기병사단과 미 제24사단의 접경 지역으로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강을 건너와 현풍일대의 감제 고지를 장악하였다.

8월 10일에서 12일의 3일 동안, 낙동강은 가뭄과 더운 날씨로 인해 수위가 약 1m 정도 낮아져 거의 어깨높이까지 낮아졌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군의 도하 조건을 매우 쉽게 만들어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군 제25연대의 선두대대가 8월 12일 오전 3시 경 고령-대구 사이에 있던 덕송동 근처에서 낙동강을 도하하기 시작하였다. 북한군은 용포교 부근의 미군 제7기병연대 제2대대의 정면을 향해 강을 건너갔다.

[씩실늪과 논공들, 북한군의 처절한 패배가 담긴 곳]

같은 시기 북한군의 일부가 강물이 얕은 논공읍 삼리1리 씩실마을 쪽으로 건너왔다. 미군의 공습을 피해 한밤중에 강을 건너와 들판의 밤숲에 숨어 있던 북한군은 다시 밤의 어둠을 이용하여 마을 쪽으로 진격을 시도하였다. 당시 마을 일대에는 미군 제7기병대가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었다. 한밤중 강을 건너온 북한군이 마을로 진격하다가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게 된다. 강의 건너 왔는데 씩실늪이 마을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씩실 늪을 몰랐던 북한군은 강의 줄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건너고자 하였다. 그러나 늪의 구조가 강 쪽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곳은 조금만 들어와도 바로 절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를 알리가 없는 북한군은 한밤중에 늪을 건너려다가 바로 빠져 버리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갑작스러운 깊이에 당황한 북한군을 향해 미군들이 집중 공격을 하여 쉽게 격퇴시켰던 것이다.

당시 피난 갔다 온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들판과 씩실 늪에 북한군의 시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한다. 들판의 파여진 부분은 물론이고 씩실 늪이 시신으로 덮여 늪은 물이 아니라 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 늪에 빠진 시신은 그냥 놔뒀는데... 우리 동네 사람들은 늪의 고기를 몇 년 동안 입에 안되었어. 고기를 아예 안먹었다카이. 근데 그걸 모르는 다른 동네 사람들이 낚시해서 잡아갔지. 우리는 사람을 뜯어 먹은 고기기 때문에 안먹었어요..” (이달우, 남, 80세)

그리고 8월 12일에서 14일 사이 삼리리 부근 용포와 위천동 쪽으로 진격해오던 북한군은 미군의 공격을 받아 25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물러갔던 것이다.

이렇듯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전투에서 전세가 전환되어 갔고, 이를 바탕으로 전개된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다시 북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낙동강선 방어작전」 『6.25전쟁사』 5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08)

『THE HISTIRY OF THE UNITED NATIONS FORCES IN THE KOREAN WAR』 V Ⅳ, (THE MINISTRY OF DEFENSE THE REPUBLIC OF KOREA, 1975)

『馬山日報』 1950년 8월 15일

정보제공자

이달우 (남, 1937년생,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1리 씩실마을 노인회 회장)

이영수 (남, 1939년생,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1리 씩실마을 광산이씨 중파 14대 종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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