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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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東書院址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제연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76년 - 도동 서원 사액을 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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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871년 - 도동 서원 훼철 |
소재지 | 도동 서원 터 -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 |
성격 | 서원터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서원터.
[개설]
목천현지(木川縣誌)인 『대록지』에 의하면 도동 서원(道東 書院)은 은석산(銀石山)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도동 서원은 주자(朱子)를 주향으로 하고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후천(朽淺) 황종해(黃宗海)를 배향하였던 현 천안 지역[천안군, 목천현, 직산현]의 유일한 사액 서원이었다.
[변천]
1. 서원의 창건
도동 서원이 병천면 병천리에 건립된 것은 정구가 만년에 목천의 번자울[반계: 도동 서원 터 동쪽의 앞산 너머 마을]에서 거처하면서 이 지역과 인연을 맺는 데에서 출발한다. 정구는 김굉필의 외증손이고 판서 정사중(鄭思中)의 아들로 성주 이씨와 혼인한 인연으로 경상도 성주에 정착하여 살다 만년에 목천에서 머물렀다.
정구가 목천의 선비들과 은석산 아래에서 강사(講舍)를 세우기 위해 터를 닦던 중 흙속에서 ‘竹林(죽림)’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돌을 찾게 되었다. 이것은 주자 정사의 호와 같은 것이어서 우연이 아니라고 여기며 강사의 이름을 ‘죽림 정사’라 지어 부르게 되었다.
『서원등록』에 따르면 이때에 주자를 제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분명한 사실인지 알 수 없다. 『동국원우록』과 『조두록』, 『문헌비고』에는 도동 서원이 인조 기축년(1649년)에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대록지』에서는 죽림 정사를 세운 후 서원을 창건해 주자를 제향하고 탁영 김일손과 한강 정구를 배향하였고, 인조 기축년에 후천 황종해를 추배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동 서원과 관련된 기록 중 황종해의 제자 백곡 김득신[1604~1684]이 지은 「신정 죽림 서원 주회암 봉안문(新○竹林書院朱晦庵奉安文)」과 「죽림 서원 강당 상량문(竹林書院講堂上樑文)」, 향사축과 집례 홀기 등이 주목되는데, 이를 보면 황종해가 사망하고 김득신이 중심이 되어 죽림 서원을 정비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정구가 죽은 후 목천에 연고가 있던 김일손(金馹孫)[1464~1498]을 배향하였다. 김일손은 원래 영남 사람이지만 목천에 살던 예안 김씨 김미손의 사위가 되면서 목천현 동쪽 구도리에 거주하였고 묘 역시 목천현에 있었다. 「탁영 선생 연보」에서는 1664년(현종 5)에 김일손이 목천 죽림사에 배향되었다고 하나 『조두록』에는 1674년(현종 15)으로 기록되어 있다. 인물의 배향 시기 문제는 기록마다 다르게 나와 있어 혼란을 준다. 정구의 배향 시기에 대해 『조두록』은 1676년(숙종 2)으로, 황종해의 추배 시기에 대해서 『조두록』은 1676년, 『대록지』는 1649년(인조 27)으로 되어 있다.
창건 후 죽림 서원이라 불리던 도동 서원은 1676년(숙종 2)에 ‘도동’으로 사액을 받게 되었다. 서원 등록에는 도동 서원을 목천 땅의 문목공 정구의 사우(祠宇)라고 일컫고 있다.
2. 운영과 변천
도동 서원은 사액 받은 후에 계속해서 중수가 이루어졌다. 『대록지』에는 1697년(숙종 23)에 중수한 상량문[김상기 찬]과 1698년(숙종 24)에 강당을 중수한 상량문[김은정 찬]이 실려 있다.
또한 『대록지』에는 도동 서원의 유생은 장의가 있어 사림 가운데에서 하고, 원생 20인은 양민이 하며, 교원생은 모두 월강하는 규정이 있는데 예전에는 각 면에서 별도로 정한 훈장이 학업을 권과하였지만 지금은 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서원의 위전은 1결 44부에 시기는 35부이고, 수전은 1결 40부에 시기는 1결 10부이며, 몇 명의 서원 위노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도동 서원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다.
[위치]
도동 서원 터는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병천 6리 은석산 동쪽 사면의 서원말에 있다. 『대록지』에 따르면 도동 서원은 은석산 아래 물이 맑고 기암괴석이 많은 경치 좋은 곳에 있었다고 한다.
[현황]
현재 도동 서원 터의 일부에 가옥이 들어서 있고 일부는 밭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주변에 초석과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초석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져 찾아보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충청남도 지역의 대부분은 조선 시대에 행정적으로 공주목과 홍주목에 속해 있었지만 천안 일대는 청주목에 속하였다. 서울과도 가까워 호서 사족이 서인 노론계가 강했던 것과는 달리 천안 지역에는 동인과 기호 남인 계열이 일찍부터 자리하였던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학문적 성향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도동 서원으로 이곳에 배향된 한강 정구는 이황과 조식에게서 성리학을 배웠던 대표적인 영남 남인계 인물이다. 또한 주자를 배향한 서원으로도 주목이 되어 충청남도의 기호 유학사에 큰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