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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상동 여랑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2432
한자 龍上洞女郞堂
영어의미역 Yeorang Hall in Yongsang-d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조정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공민왕|여랑
관련지명 여랑당
모티프 유형 여랑의 희생|여랑을 위하여 여랑당을 세운 공민왕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에서 여랑당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은 고려 제31대 왕으로 이름은 전(顓), 호는 이재(怡齋)·익당(益當)이다. 왕위에 오른 뒤 원나라를 배척하고 친원파인 기씨(奇氏) 일족을 제거하였다. 원나라에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는 등 국위를 떨쳤으나 후에 최만생(崔萬生)홍윤(洪倫)에게 살해되었다.

[채록/수집상황]

1994년 경상북도 교육위원회에서 출간한 『경상북도 지명유래총람』과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동시사』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 지역에 왔을 때의 일이다. 공민왕은 여랑을 데리고 와서는 늘 곁에 두고 귀여워하였다. 공민왕은 적군하고 싸우기 위하여 안동에 왔기 때문에 진지를 구축하며 홍건적과 계속 싸웠는데, 이때에도 여랑은 공민왕을 계속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싸움에서 홍건적이 가만히 숨어 있다가 공민왕에게 화살을 쏘았는데, 그때 여랑이 몸을 날려 왕 대신 화살을 맞았다. 공민왕을 살린 것이었다. 공민왕은 애통해 하며 화살에 맞은 여랑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였지만, 여랑은 끝내 죽어 버렸다. 죽으면서 여랑은 “나는 홍건적을 물리치는 신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민왕은 이후 홍건적과의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여 난을 평정하게 되었다. 그 후 공민왕은 환도하였는데, 여랑의 원혼을 달래 주기 위하여 용상동에 당집을 지어 모시도록 명을 내렸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용상동에 당집을 지어 이름을 여랑당이라 불렀으며, 안동부사가 매년 정월 열 나흗날 밤에 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용상동 여랑당」의 주요 모티프는 ‘여랑의 희생’과 ‘여랑을 위하여 여랑당을 세운 공민왕’이다. 위대한 영웅 주변에는 자신을 희생해서 영웅을 살리거나 돕는 작은 영웅들이 다수 등장한다. 여랑 역시 공민왕을 대신하여 죽고 홍건적을 물리치는 신이 되겠다고 함으로써 희생을 통한 적극적인 기여의 모티프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신으로 좌정하여 안동부사가 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함으로써 마을 동신의 격을 높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말미에서는 여랑당의 유래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안동 지역에는 공민왕의 몽진에 관련한 많은 설화가 전하는데 「공민왕의 싸움터 오마대」·「공주를 태워서 시작된 놋다리밟기」·「서기가 비친 영호루 현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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